“(리그 중단은)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전염병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배구 V-리그 원년멤버인 박철우(35·삼성화재)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배구연맹(KOVO)의 유례없는 리그 중단 결정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KOVO는 같은 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올 시즌 V-리그의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박철우는 지난달 25일 한국전력과의 경기 뒤엔 인터뷰에서 마스크를 꺼내 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권하기 위한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그가 이렇게 나선 데엔 이유가 있었다. 박철우는 1월 중국 장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 예선전에 참가했다. 코로나19가 막 전파되기 시작한 시점. 임도헌 감독을 비롯해 동행한 대표팀 관계자들도 감염 가능성에 민감했던 터였다.
귀국한지 단 4일 뒤 문제가 생겼다. 훈련을 마친 박철우는 갑자기 심한 발열과 기침에 시달렸다.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돼 바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A형 독감으로 판명됐지만 자택에 격리돼야 했다. 아이들을 외가에 보내고 마스크를 쓴 채 거의 일주일을 앓았다. 박철우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경험이었다”며 “코로나19 증상은 독감의 몇 배는 더 심하다는데 확진자가 늘어나 걱정”이라고 상기했다.
국가적 재난 사태임에도 리그 중단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어차피 무관중 경기를 치르니 강행하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합숙하는 선수들이 실제 느끼는 불안감은 컸다. 선수단 숙소에 급식·청소를 담당하는 인원과 코칭스태프들이 출퇴근을 한다. 삼성화재의 경우엔 다른 4종목 선수단과 한 건물을 쓴다. 선수들은 불안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박철우는 “숙소나 경기장에 선수만 있는 게 아니다”며 “한 명이라도 걸리면 집단 감염이 우려돼 모든 선수들이 뒤숭숭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2005년 출범한 V-리그 원년멤버인 박철우에게도 무관중 경기와 리그 중단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만큼 팬들의 소중함도 느끼게 됐다. 박철우는 “15년간 제 삶의 반 이상을 차지한 게 배구였는데 못하게 되니 아쉽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든다”면서도 “무관중 경기를 치르며 팬들의 호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돼 감사함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삼성화재는 ‘초여름배구’가 될지도 모르는 봄배구 진출 가능성이 희박하다. 현대캐피탈(3위)이 남은 경기를 모두 지는 동안 OK저축은행(4위)도 저조한 성적을 거둬야 그나마 준플레이오프 가능성이 생긴다. 삼성화재의 에이스 박철우는 그럼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30대가 되면서 오히려 배구가 더 재밌어졌어요. 팬들에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리그 재개 준비를 잘해 꼭 유종의 미를 거두겠습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