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대구를 지키는 슈퍼맨들

입력 2020-03-03 14:57 수정 2020-03-03 16:24
지난달 2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대구의 한 병원에서 관계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19 진료에 사용했던 방호복과 마스크 등이 담긴 의료용 폐기물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포가 집어삼킨 대구 도심 거리를 매일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감염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며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이들이다.

대구경북 지역 의료폐기물 수거업체 소속 A씨는 매일 방호복을 2개 겹쳐 입고 현장으로 출근한다. 그가 출근하는 곳은 매일 확진자가 발생하는 대구 지역 보건소와 청도대남병원 등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일반 의원들의 의료폐기물도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단 코로나19 관련 폐기물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오면서 일단 이 곳으로만 차를 몰고 있다.

2차 감염 위험이 높은 의료용품과 의료폐기물은 전문 업체를 지정해 일반쓰레기와 분리해 처리해야 한다. 메르스 사태 때는 별도의 전담 업체가 지정됐지만, 코로나19가 대구 전역에 빠른 속도로 번지면서 업체를 따로 지정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코로나19 검체 검사 뒤 나오는 폐기물의 양도 급증했다. 대구지방환경청 관계자는 3일 “해당 의료기관 폐기물 수거 업체가 당일 수거해 당일 소각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씨가 병원 폐기물 창고 앞으로 가면 기관 직원들은 밀봉된 폐기물을 보관창고에서 꺼낸다. 1t 분량 트럭은 금세 가득 찬다. 확진자가 많아 폐기물 양이 많은 병원은 3.5t 트럭을 끌고 간다고 한다.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커지면서 선별진료소나 지정병원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다른 의료기관 폐기물과 섞지 말고 즉시 처리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이 때문에 한 의료기관 폐기물을 싣고 나면 곧바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경산 소각장으로 향한다.

A씨 트럭이 들어서면 소각장도 비상이다. 코로나19 폐기물이 소각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생활폐기물이나 일반 의료기관 의료폐기물을 소각장으로 운반하는 작업은 중단된다. 소각장 직원이 A씨가 탄 트럭에 소독약을 뿌려대고, 소각장에 차량이 들어서면 모두 긴장된 상태로 하적작업을 진행한다. 곧바로 소각로에 넣은 뒤에야 작업이 끝난다.

감염 걱정은 안 되느냐는 질문에도 A씨는 덤덤했다. 그는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폐기물을 만지는 작업을 하다 보니 하루 종일 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쓰는 게 일상이 됐다”며 “코로나19 관련 폐기물이 갑자기 몰려 힘이 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계속 작업을 해야 안심 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A씨와 같은 일을 하는 B씨도 “국가적 사태인데 어떡하느냐”며 “다들 힘이 많이 들지만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대구에서 방역소독업체를 운영 중인 박병규씨가 시설 소독 봉사를 하고 있다. 박병규씨 제공

대구 수성구 일대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박대호씨는 매일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하루 8시간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일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는 상황에서도 일은 쉬지 않았다. 박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쨌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담담하게 일 하고 있다”며 “걱정은 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모두 내색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감염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로 생활폐기물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위생 관리에 신경 쓴다는 설명이다.

박씨는 매일 작업하는 쓰레기의 양을 보며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박씨는 “신천지 확진자가 나온 이후부터 상가 건물이나 음식점에서 나오는 쓰레기양이 크게 줄었다. 반면 배달 용기처럼 가정에서 배출되는 음식 주문 폐기물이 크게 증가했다”며 “장사하는 사람들은 어렵고, 불안한 마음에 집에서 배달을 시켜먹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었다”고 했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은 아예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구 노인복지센터 직원들은 약을 대신 처방 받아 전달하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지병 등 때문에 꼭 받아야 하는 약은 저희가 대신 받아서 문 앞에 놓고, 초인종을 누르거나 전화를 드리는 방식으로 갖다드리고 있다”며 “다음 주에도 어르신들 집에 방문해 손소득제 등 긴급구호물품을 갖다 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대구에서 방역소독업체를 운영 중인 박병규씨는 무료소독 자원봉사에 나섰다. 동네를 돌면서 어르신들이 머무는 집이나 어린이집, 종교단체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설을 찾아 작업에 나서고 있다. 손님이 끊긴 소상공인들도 돕고 있다. 무료 작업 후에는 ‘○○일 매장 내 전체 소독 완료, 안심하고 들어오세요’ 라는 글을 직접 써 매장에 붙여준다. 그는 “소독을 해드리고 가게에 ‘소독 완료’ 안내문을 붙이면 조금이라도 손님이 더 오지 않을까 해서 도와드리고 있다”며 “대구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니까 시간 나는 대로 다니면서 발길 닿는 대로 소독을 해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