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 돈세탁 도운 중국인 2명 기소·제재
미국 “북한 해킹 자금, 미사일·핵 투자에 활용”
북한에 석유 운반했던 러시아 회사는 제재 해제
미국, 북한에 ‘채찍과 당근’ 강온 전략 구사
2018년 4월, 암호화폐 거래소의 한 직원이 이메일 속의 파일 하나를 무심코 다운로드했다. 이 파일엔 북한의 악성 소프트웨어가 심어져 있었다. 북한 해커들은 원격 접속을 통해 거래소 서버의 개인 암호에 불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북한 정찰총국 산하의 해킹그룹 ‘라자루스’에 소속된 해커들은 이런 수법으로 2억 5000만 달러(약 2900억원)를 훔쳤다. 이 금액은 북한이 2018년 한 해 해킹으로 갈취한 액수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미국 재무부는 설명했다.
북한은 돈세탁을 위해 중국 국적자 티안인인, 리자둥과 손을 잡았다. 티안과 리는 2018년 4월 북한이 관리하는 계좌로부터 9100만 달러(약 1000억원)와 추가로 950만 달러(약 110억원)을 받았다. 이 돈은 북한이 각각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해킹해 훔친 돈이었다.
티안과 리는 자금 출처를 숨기기 위해 자신들이 보유한 인터넷 주소들로 돈을 옮겼다. 특히 티안은 3400만 달러(약 400억원)를 새로 개설한 자신의 중국계 은행 계좌에 넣었다. 티안은 또 140만 달러(16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선불 ‘애플 아이튠 기프트 카드’ 구매를 위해 거래했는데, 이 기프트 카드는 특정 거래에서 추가적인 비트코인 구입이 가능한 것이었다.
미 재무부는 2일(현지시간) 티안과 리를 기소하고 이들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한 지 몇 시간 지나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시간상으로 우연의 일치인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보복 조치인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 재무부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북한의 해킹으로 인한 자금이 북한 정권의 불법적인 탄도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 투자에 계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제재가 북한이 암호화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의 처음이자 대규모 조치라고 분석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북한 정권은 자금을 훔치기 위해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사이버 공격을 위한 지속해왔다”면서 “미국은 북한의 사이버 범죄를 돕는 자들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보호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대북 관련 제재를 단행한 것은 지난 1월 14일 북한의 해외 노동자 불법 송출에 연관됐던 북한 기업과 중국 숙박시설을 대상으로 제재를 가한지 한 달 반이다. 또 미 재무부는 이번 중국인 2명에 대한 돈세탁과 관련된 라자루스를 포함해 블루노로프·안다리엘 등 북한의 3개 해킹그룹에 대한 제재를 지난해 9월 단행했다.
미 재무부는 그러나 북한의 석유 제품을 운반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했던 러시아독립 석유회사(IPC)와 그 자회사에 대해 제재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은 북·미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6월 1일 제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미 재무부는 “IPC가 북한에 100만 달러 규모의 석유 제품을 실어 날랐다”면서도 “제재 단행 이후 그 모회사인 AOC가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동 중단을 분명히 해왔다”고 평가했다.
미 재무부는 “미국의 제재는 영구적일 필요는 없다”면서 “미국은 북한 유관 당국 소속 인사들의 경우 북한의 제재 회피를 가능하게 하는 일을 중단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조치를 한다면 제재 해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 관련 제재를 풀어준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지만, 북한 관련 인사들에 대해서도 제재 해제를 시시한 것은 크게 주목되는 부분이다. 미국이 ‘채찍과 당근’이라는 강온 전략을 구사하면서 북한의 협상 테이블 복귀를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