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데 덮친 ‘저소득 자영업자’들의 비명…대책 먹힐까

입력 2020-03-02 17:26

대구에서 20년 가까이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교(60)씨는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앞으로 2개월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대구시 지부장도 맡고 있는 그는 2일 “코로나 사태 이후 업소별로 평소보다 50~80% 가까이 손님이 줄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 겪는데,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가 자영업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각종 모임과 행사가 취소되고, 상점을 찾는 고객들이 뚝 끊기면서 ‘매출 절벽’에 맞닦뜨린 상황이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임대료와 인건비 등 나가야 할 돈은 줄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도입 등으로 지난해 이미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자영업 중에서도 취약 계층으로 꼽히는 연소득 3000만원 미만의 저소득 자영업자들은 ‘고위험군’에 속한다. 대출금 연체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부류다. 상황에 따라 줄도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금융권이 대출만기 연장 등 지원 방안을 잇따라 내놨지만 뒷북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통계청의 ‘2019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구의 사업소득은 전년 동기보다 2.2% 감소했다. 사업소득은 자영업자의 소득을 나타내는데, 2018년 4분기 이후 5분기 연속 줄었다.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간 감소세다.

소득은 감소하는데, 나가야 하는 돈이 줄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대출을 더 늘릴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부류는 저소득 자영업자들이다. 전문가들은 “사업 규모가 적고 업황 부진을 견뎌낼 여력이 부족해 대출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저축은행과 대부업 등 고금리 대출업권에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저소득 자영업자들의 고금리대출업권 이용 비중은 12.4%로, 여타 자영업자(4.7%)들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잠재적 부실’ 지표인 연체(5~10일 이상) 차주의 비중은 4.1%였다. 다른 자영업자(2.2%)보다 높았다. 장기(90일 이상) 연체 차주 비중(2.2%)도 꾸준히 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지표들이 코로나19 사태 이전 상황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여파가 국내에 본격 확산되기 시작한 2월 중순 이후 사정을 감안한다면 저소득 자영업자들의 소득 및 대출, 연체율 등의 실제 지표는 훨씬 더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금융권에서는 자영업자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KB·신한·우리·하나·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지주는 이날 ‘대구·경북 지역 대출만기 자동 연장’ ‘금리우대 및 대출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놨다. 앞서 정부도 7조원을 들여 문화·관광·출산 등 5대 분야에 ‘소비쿠폰 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일정기간 임대료를 면제 또는 깎아주는 ‘착한 임대인’ 캠페인도 지역별로 확산 추세다. 하지만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이미 상당한 빚을 진 자영업자들로서는 이같은 임시방편이 ‘최악의 시점’만 뒤로 미뤄주는 착시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