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여명의 이주자들이 1일(현지시간) 터키와 그리스 국경지대에 쏟아졌다. 터키가 더는 중동 난민들을 자국내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국경을 열자 다수의 이주민들이 유럽연합(EU)으로 넘어가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수백만의 중동 난민이 서유럽에 쏟아져 들어왔던 2015~2016년 난민사태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중동 이주자들은 이날 터키와 그리스를 가르는 길이 약 200㎞의 에브로스 강 주변에 운집해 강을 헤엄치거나 국경 울타리 아래를 파고드는 등의 방식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인 그리스 진입을 시도했다. 터키가 지난 28일 자국에 유입된 중동 이주자들이 그리스와 불가리아 등 주변 EU 회원국으로 향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이틀만에 유럽 사회의 난민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리스 당국은 강경 진압에 나서 이주자들의 역내 진입을 저지시켰다. 경찰들은 이주자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고 쇠막대를 휘둘렀다. 국경지대에서 발이 묶인 이주자들이 추운 겨울 날씨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인도주의적 우려가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주자 중 한 사람이 밤사이 추위로 숨지는 일도 발생했다고 전했다.
최근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시리아 반군의 마지막 거점인 이들립에 군사 공세를 펼치자 반군의 후원자인 터키 정부가 반격에 나서면서 시리아 내전이 다시 격화됐다. 지난해 12월 이후에만 90만명이 넘는 피란민이 발생하며 역내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피란민의 상당수는 이웃나라인 터키로 흘러들어간다.
이미 360만명의 중동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터키 정부는 더 이상 자국이 홀로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EU 국가들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양측은 지난 2016년 난민 사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터키가 중동 이주자들을 자국에 붙잡아두면 EU는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의 협정을 맺었다. 터키의 EU 가입에 속도를 내겠다는 약속도 함께였다.
터키는 현재 EU가 재정 지원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난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국에 지우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 결국 중동 이주자들이 EU로 넘어갈 수 있도록 국경을 열겠다는 것은 유럽 사회를 향한 엄포성 조치에 가깝다. 난민 사태 당시 중동 이주자들은 터키, 그리스, 발칸국가들,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유입됐는데 이주자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EU 국가들은 갈등을 빚었고 각국 내부적으로도 큰 혼란을 겪었다.
다시 돌아온 난민 공포에 EU 국가들은 떨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성명을 통해 “터키는 이주자와 난민 밀수망을 억제하는 대신 스스로 밀수업자가 됐다”고 비난했고, 오스트리아 정부는 자국 동부 국경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지 매체들은 터키의 이번 조치에 대해 ‘난민 카드’로 유럽을 압박해 시리아 군사작전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도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