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국가적으로 확산하면서 각계의 신천지증거장막(신천지) 고발을 받은 검찰은 우선 전문가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임무 수행에 수사가 도움이 될 것인지의 여부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가 압수수색을 언급하며 고강도 수사를 주문했지만, 검찰의 강압적 조치가 신천지 신도들의 ‘음지화’로 이어질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검찰 내에서 감지되고 있다.
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간부회의 등 과정에서 “‘수사를 위한 수사’보다도 ‘방역당국 행정에 협조할 수 있는 수사’가 돼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와 서울시의 고발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대검찰청은 방역당국과 협조 체계를 유지하며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강압적인 조치로 신천지 신도가 음성화할 경우 방역에 긍정적이지 않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중대본은 현 단계에서는 검찰의 강제수사 역효과가 크다는 의견을 지난 28일 검찰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검은 이와 관련해 지난 1일 일선 검찰청에 신중 수사 기조를 담은 업무연락을 하달했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할 시 대검과 사전협의하라는 지시와 방역당국에서 검찰의 강제수사가 음성화로 이어질 것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전해 왔다는 알림 내용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당국의 역학조사 방해와 거부 등 불법행위가 있으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로 강력하게 대처하라고 대검을 통해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신천지 교주 이만희(89)씨의 체포를 언급하며 공개적으로 수사를 촉구했지만, 윤 총장은 현 단계에서는 전문가인 방역당국과 중대본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의중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중대본 판단이 우선이며, 검찰도 전문가인 중대본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는 “단순히 지켜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좀 면밀히 보자는 기조”라고 설명했다. 한 수도권 검사장은 “지금 시국에선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며 “신천지 특성상 내부로 숨어버릴 경우 코로나 확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법집행기관에선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이씨 등에 대한 서울시의 고발 사건을 형사2부(부장검사 이창수)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의 수사는 결국 신도 명단과 집회장 자료의 누락이 고의인지 과실인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증거 확보를 위한 어느 정도의 강제수사 착수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출신인 김한규 변호사는 “누구 말이 맞는지 따져보기 위해선 압수수색을 통해 컴퓨터 등을 확보해야 한다”며 “컴퓨터를 숨기는 등 증거인멸 행위가 드러나면 사안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일부 지자체에서 주장하는 신천지의 자료 미제출 행위가 고의가 아닌 ‘과실’이라면 법적 책임을 묻긴 쉽지 않다. 중대본은 이날 “지자체가 확보한 신천지 명단은 대체로 신천지에서 제공한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신천지 측은 1일 입장문을 내고 허위자료 제출을 통해 역학조사 업무를 방해했다는 의혹에 대해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국 74개 교회를 폐쇄하면서 행정이 중단되어 단 기간에 주소 등의 변경사항을 재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는 최상의 시스템 체계를 갖춘 정당이나 대기업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검찰 수사의 또다른 쟁점은 교주 이씨의 지시가 실제 어느 정도로 작용했는지의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천지 실무진이 실제 이씨의 지시를 받고 질병관리본부 등에 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정황이 입증되면 이씨도 감염병예방법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도진기 변호사는 “신천지가 허위자료를 제출했다고 가정한다면 자료 제출자가 수뇌부인지, 이씨인지, 실무자급에서 이뤄진 것인지 검찰에서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이 우선”이라고 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