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필요한 건 코로나19 공포 완화
위험자산으로 통하는 주식 가격이 급락하면 채권과 금 달러 등 안전자산으로 투자수요가 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는 이런 투자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10년만기 미국 재무부 채권 수익률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급락을 거듭해 지난 28일 현재 연 1.15%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 거론되기 직전인 1월 17일 연 1.82%보다 무려 0.67%포인트나 빠졌다. 지난 일주일 동안엔 하락폭의 절반인 0.32%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런 초저금리 상황이 연출되자 채권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투자욕구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이일드 본드는 물론 투자 적격 채권 발행마저 꺼리는 상황이 됐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의 10여개 대기업들이 채권 발행을 철회한채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국내 채권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7일 기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채권형펀드 시장에서 3919억원이나 빠져나갔다. 지난 24~25일 이틀 연속 1600억원 가량씩 순유입되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채권 수요가 급감하자 국제 채권시장에서 신용등급 BBB 미만의 정크본드에 붙는 가산금리는 지난 3.66%에서 4.18%로 0.52%포인트나 급등했다. 4년 전 영국의 브렉시트 발표 이후 가장 높은 급등세다.
주식시장과의 ‘길항관계’가 실종된 건 채권시장만이 아니다.
사상최고치를 이어가던 국제 금값도 지난 25일부터 나흘 연속 급락장을 연출했다. 지난 24일 온스당 1672.40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금값은 28일 1564.10달러로 6.5% 떨어졌다. 이날 하루동안엔 4.62%나 빠졌다. 국내 금값도 지난달 24일 6만5775.68원에서 2일 현재 61347.12원으로 6.7% 떨어졌다.
이처럼 투자자들의 행태가 다른 위기 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갑자기 닥친 ‘팬데믹 공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이 채권 금 전통적인 안전자산마저 위험하다는 패닉에 휩싸이면서 현금확보에 나섰다는 것이다.
눈여겨 볼만한 것은 달러의 움직임이다. 달러 인덱스도 지난달 21일 99.26에서 28일 98.13으로 내려갔다. 2일 국내 외환시장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93.70원으로 전거래일보다 20.0원이나 떨어졌다. 20.1원이 떨어진 2017년 1월5일 이후 3년여 만에 최대 낙폭이다.
치솟던 달러 가치가 떨어진 것을 두고는 두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다. 달러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작용했거나 파월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동시에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28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긴급성명을 발표한 데 따라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달러 값이 주춤해졌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파월 의장은 연준 홈페이지에 올린 긴급성명에서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강하지만, 코로나19가 경제활동의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며 “연준은 경제를 뒷받침하고자 적절하게 행동할 것이며, 우리의 수단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오는 18~19일 FOMC에서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연내 두차례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도 점점 커지고 있다. 국내 증권 전문가들은 지난 27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도 인하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금리 동결 이유와 관련, 세차례나 강조한 부분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현 단계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이 보건·안전의 위기상황인데 그런 상황 하에서는 금리인하보다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나 기업에 대한 선별적·미시적 지원대책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설명한 부분이 그것이다.
이 총재의 언급은 현재 위기가 시중에 유동성이 말라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자칫 유동성을 쏟아부었다가 오히려 금융시장을 왜곡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생산과 공급의 차질이 빚어지는 부분을 정부가 미시대책으로 뚫어주면 될 일이지 중앙은행이 간섭할 일은 아니다. 지금 절실한 건 코로나 감염공포의 완화다. 기준금리 인하한다고 당장 자동차를 새로 사거나 고급 식당이나 백화점에서 소비를 늘려주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물론 기준금리 인하가 시장의 불안감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증시패닉에 놀라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은 또 다른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인정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구분 없이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섣부른 개입은 자칫 기름을 들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