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봉오동 전투 100주년…대전 국립현충원 안장될 듯
문재인 대통령은 제101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유해 봉환을 공식화했다. 홍 장군은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다. 당시 일본군에게 ‘하늘을 나는 장군’으로 불리는 등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청산리 전투 승리에도 상당한 공을 세웠지만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는 등 공산권에 적을 뒀다는 이유로 해방 후 저평가를 받은 비운의 영웅이기도 하다.
홍 장군은 1868년 평양의 한 양반댁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 감영, 황해도의 제지소에서 일하다 강원도 북부 지역에 정착해 사냥꾼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일제에 맞서 의병을 결성했고 무장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홍 장군은 연해주로 망명하면서 무장 운동을 본격화했다. 일본군에게는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민중들에게는 ‘백두산 호랑이’, ‘축지법을 구사하는 장군’으로 추앙받았다. 먼 거리에서 총을 쏴 유리병의 입구를 통과해 병의 바닥을 맞히는 사격 실력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전설의 스나이퍼’였던 셈이다.
홍 장군은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로 실제 전설이 된다. 일본군은 전투 시작 3시간 만에 사망자 157명을 포함해 사상자 500여명을 남기고 도망쳤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첫 대승이었다. 홍 장군은 그로부터 4개월여 뒤 청산리 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다. 청산리 전투의 승리에는 주로 김좌진 장군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해방 뒤 홍 장군의 전투 공적이 역사적으로 저평가 됐다는 시각이 있다. 홍 장군이 공산권에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 장군은 1937년 옛 소련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정책 때문에 연해주에서 1938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주했다. 병원 경비, 극장 수위로 근무하며 말년을 보냈다. 홍 장군은 1943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홍 장군의 유해 봉환 문제는 카자흐스탄과 수교 이래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고 한다. 홍 장군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는 북한과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의 반감이 이유였다. 다만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당시 마지막 방문지인 카자흐스탄에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봉오동 전투 100주년인 2020년에는 홍 장군 유해 봉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정부는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위해 카자흐스탄과 실무 협의를 해왔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말 공군 수송기를 카자흐스탄으로 보내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독립 유공자 계봉우·황운정 지사 부부의 유해는 카자흐스탄에서 공군 2호기 편으로 봉환됐다. 서울 현충원은 묘역을 조성할 공간이 없어 홍 장군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가능성이 높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