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그림을 그리거나 큰 의도를 갖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작은 세계에서 조그맣게 사는 사람입니다.”
제7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거머쥔 홍상수(60) 감독은 자신의 작품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9일(현지시간) 수상 직후 베를린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가 ‘작은 것을 통해 미투 현상 등 현대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홍 감독은 “영화를 만든 뒤 메시지나 의도가 생길 수 있지만 되도록 사전에 배제하려 하는 편이다. 달콤한 사각지대에서 머무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되도록 큰 의도를 갖고 만드는 유혹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한다”면서 “강한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연출 방식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소재로부터 출발해 구조가 생기고, 연출을 계속하는 방식이다. 영화가 잘 만들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느낌에 따라 움직이려고 한다”면서 “내가 일하는 방식은 먼저 시작을 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어떤 장소를 생각하고 있다든가, 특정 배우가 떠오르면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도 곁들였다. 홍 감독은 “배우와 함께 장소에 찾아가 배우와 장소가 만나게 해준다. 촬영하기 일주일 전에 시퀀스나 대본을 작성한다. 몇 개의 장면에 대한 대본을 쓰고 이후 장면을 생각하며 계속 발전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 2∼3일 정도 촬영하고 나면 전반적인 구조가 나오게 된다”고 얘기했다.
홍 감독은 이날 시상식에서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되자마자 연인인 김민희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이후 무대에 올라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나를 위해 일해준 사람들,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허락한다면, 여배우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면서 동석한 김민희와 서영화에게 공을 돌렸다.
‘도망친 여자’는 결혼 후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던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두 번의 약속된 만남과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과거 세 명의 친구를 만나게 되는 감희(김민희)를 따라가는 영화다. 홍상수와 김민희가 7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김민희 외에도 서영화 송선미 김새벽 권해효 등이 출연했다. 올봄 국내 개봉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