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 후 지금까지 이어지며 무수한 사상자를 낸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18년 만에 종식 국면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아프간 무장조직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아프간 전쟁을 종결짓기로 했다. 미국이 내년 6월까지 아프간 주둔 병력을 전면 철수하는 대신 탈레반은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절연하는 조건이다. 다만 합의가 원활히 이행될지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잘마이 칼릴자드 미 국무부 아프간 특사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공동창설자는 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협정 최종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체결 직후 열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아주 성공적인 협상을 해냈다”며 “모두가 전쟁에 지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탈레반 지도자들과 직접 만날 용의가 있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나쁜 일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탈레반 측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도하에서 서명식을 지켜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탈레반 통치 시절 아프간에서 모의됐던 9·11 테러를 생각하면 아직도 분노를 감출 수 없다”며 “미군의 피와 땀, 눈물로 이룬 승리를 허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탈레반이 우리 측 조치에 발맞춰 합의를 이행할지를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며 “이를 통해 미국은 아프간이 국제 테러조직의 기지가 되는 일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합의문에서 아프간에 주둔 중인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국제동맹군 병력을 14개월 후인 내년 6월까지 전면 철군키로 했다. 미군은 합의 이행의 첫 단계로서 체결 당일로부터 135일 안에 현재 1만2000여명 규모인 아프간 주둔 병력을 8600명까지 감축할 계획이다. 탈레반 측은 아프간 영토 내에서 알카에다 등 극단주의 무장 세력이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하는 근거지로 삼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군과 종전을 논의하기 위해 3월 10일부터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협상에 앞서 양측은 미군 및 국제동맹군이 억류 중인 탈레반 포로 5000명과 탈레반 측에 붙잡힌 아프간 정부군 포로 1000명을 교환하는 신뢰 확인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아프간 전쟁 종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미국은 2018년 하반기부터 탈레반과 공식, 비공식 접촉을 가지며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탈레반 지도부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하는 방안을 극비리에 추진하다 탈레반 측 테러로 미군 1명 등 10여명이 숨지면서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다만 합의가 이행될지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전직 미 국방부 고위 관리는 WP에 “트럼프 행정부가 탈레반의 약속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다는 우려가 고위 군 관리와 정보 당국자 사이에서 돌고 있다”며 “(탈레반은) 그저 미군 철수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트위터에 “탈레반과의 합의는 미국 민간인을 용납 못할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