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외국인 관광객도 줄취소” 하소연
정부, 관계부처 합동 위약금 분쟁 관련 종합대책 준비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권모씨는 이달 하순쯤 가족과 일본 여행을 가기 위해 지난해 11월 여행사를 통해 35만원에 도쿄행 왕복 티켓을 예매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과 일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계속 퍼지자 여행을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출발일이 한 달 안으로 다가오면서 티켓 값의 3분의 1가량이 위약금으로 나가게 생겼다. 권씨는 1일 “정부가 초기에 방역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여행을 취소하는 건데 내가 왜 그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권씨와 같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계획된 여행을 취소하지만,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부터 한 달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여행 관련 고충 접수 건수는 669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6배 증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배포한 ‘국외여행 표준약관’에는 천재지변, 전란, 정부의 명령 등으로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소비자에게 계약금을 환불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최근 한국인에 대해 입국을 불허하거나 강제 격리하는 국가가 늘면서 정부는 여행업계에 이런 나라에 대해서는 위약금 없이 환불해줄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인터파크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여행사들은 최근 한국발 항공 노선 일정 조정 등을 이유로 일정을 취소하면서 입국 제한 등이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에게 위약금을 물지 않고 환불해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여행사들은 “입국 제한이 걸린 곳이 아닌, 여행이 가능한 나라로의 여행 취소는 일반적 약관에 따라 위약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처럼 입국 자체가 통제되지는 않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여행 자체가 찝찝해 취소를 고민하는 소비자들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위약금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태휘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공정위가 여행업계에 위약금 면제를 권고할 수는 있지만, 여행사와 소비자 사이에 이미 성립된 계약에 대해 법적 근거 없이 일방적 기준을 제시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는 여행사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국제 사회에 한국이 코로나19 ‘위험지역’으로 분류되면서 국내 여행사들은 국내 소비자의 여행 취소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내한 여행 취소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지난달에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피해를 본 중소 여행사들에 대해 500억원 규모의 무담보 특별융자 계획 등을 담은 대책을 발표했지만, 코로나19 타격을 받은 여행사 지원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정부는 조만간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위 등 관계부처와 여행업계, 소비자단체 등과 함께 여행 취소에 따른 비용 분담 대책을 협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