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명부는 일본군의 은폐 흔적… 수많은 피해자 숨겨져”

입력 2020-03-01 16:43
한혜인(왼쪽) 동아시아평화와 역사연구소 전임연구원, 윤명숙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장 직무대리. 본인 제공

“피해자의 기록은 온전하게 남을 수 없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명부는 조작되고 은폐됐던 피해자들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명부 분석은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았던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는 3·1절을 맞아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과 운영 실태를 보여주는 명부 분석 성과를 종합한 연구서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위안부 관련 연구자들이 수년간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오가며 명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를 책으로 낸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는 한·일 양국이 오랫동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수요집회는 오는 4일로 1429차를 맞는다. 국민일보는 이 책의 저자에 해당하는 한혜인 동아시아평화와 역사연구소 전임연구원과 윤명숙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장 직무대리에게 위안부 명부 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전임연구원은 “피해자가 귀환할 때 위안부가 아닌 다른 직업 등으로 각색된 자료로 남은 게 지금의 명부”라며 “명부 분석이란 피해자들의 증언과 기억을 명부 기록과 비교·대조해 일본군의 위안부 역사 은폐 시도를 명명백백하게 알리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증거로 남지 않은 피해자들을 어떻게 역사화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서에는 일본군이 작성한 유수명부(留守名簿), 타이완척식주식회사의 위안소 운영 관련 명부, 팔렘방조선인회명부, 중국 진화계림회명부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이 담겨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 명부 기록에 피해자들의 직업은 ‘위안부’라고 적혀있지 않다. 예를 들어 유수명부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간호부나 고용원 등으로 기록돼 있는 식이다. 일본 정부가 여전히 위안부 동원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런 만큼 앞으로 위안부 관련 명부 분석을 통해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들이 더 나올 가능성도 크다. 윤 직무대리는 “명부 분석으로 우리가 직접 보진 못했고 지금 살아계시진 않지만 위안부 피해자로서 실존했던 분들을 더 많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전임연구원은 “명부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는 위안부 피해자라고 추측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는 연구자들에게는 피해의 역사를 드러내는 작업이지만, 피해자 입장에선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역사를 밝혀내기 위해 관련 연구자들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윤 직무대리는 “위안부 역사로 박사 학위를 따도 이 전공으로는 진로가 막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신진 연구자들의 양성을 위한 위안부 역사 관련 독립 기관이 확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요집회 등 위안부 해결 운동도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연구 성과를 내놓는 것도 할머니들에겐 또 다른 치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전임연구원은 “수많은, 이름 없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공공역사’로 만들어 가는가와 연결돼 있다”고 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