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계 최대 축제인 세자르 영화상이 원로감독 로만 폴란스키(86)의 성범죄 전력을 둘러싼 논란으로 얼룩졌다.
28일(현지시간) 파리 시내 살 플레옐 극장에서 열린 제45회 세자르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은 라주 리 감독의 ‘레미제라블’에, 감독상은 ‘장교와 스파이’를 연출한 로만 폴란스키에게 돌아갔다. 세자르상은 프랑스 영화인들의 모임인 영화예술아카데미가 매년 최고의 프랑스 영화에 시상하는 프랑스 영화 최대의 축제다.
다수의 성범죄 전력이 있는 폴란스키의 최신작 ‘장교와 스파이’가 한 달 전 세자르 작품상, 감독상 등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폴란스키의 영화와 이번 세자르상 시상식을 보이콧하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프랑스 아카데미의 알랭 테르지앙 회장은 “후보작 선정시 윤리적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혀 거센 비난을 받았다. 프랑스 영화인 200여명은 지난 12일 프랑스 아카데미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고, 결국 테르지앙 회장을 비롯해 세자르상 운영진은 총사퇴를 선언했다.
세자르상 시상식이 열린 파리 시내 살 플레옐 극장 앞에서는 페미니즘 단체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폴란스키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폴란스키의 이름에 ‘강간하다’라는 뜻의 불어단어 ‘violer’를 합성해 비올란스키(violanski)라 부르며 아카데미의 각성을 촉구했다. 한때 일부 시위대가 시상식장 진입을 시도해 경찰과 최루탄을 쏘며 막는 등 충돌도 빚어졌다.
논란의 당사자인 폴란스키는 결국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 “여성 운동가들이 내게 공개적으로 린치를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교와 스파이’의 출연진과 제작진도 “폴란스키가 시상식에 앞서 부당하게 재단을 당했다”면서 시상식 참여를 거부했다.
당초 작품상, 각본상 등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장교와 스파이’는 이날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의상상을 받는 데 그쳤다. 시상식이 열리기 몇 시간 전에는 프랑크 리스터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 “(폴란스키가 수상하면) 나쁜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이라고 이례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을 수여한 것에 대한 분노 여론은 여전히 거세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배우 아델 에넬은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이 돌아가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장해 버렸다.
폴란스키는 시상식 내내 조롱의 대상이었다. 시상식 사회자인 코미디언 플로랑스 포스티는 폴란스키 작품이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을 두고 “우리에겐 12개의 근심거리가 있죠. (시위가 벌어지는 극장 밖의 상황과 관련해) 조용해지려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말해 쓴웃음을 자아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