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27일(현지시간) 500명을 넘어섰다. 발병지 중국, 인접국가인 한국·일본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나라다. 특히 ‘이탈리아발 확진자’가 유럽의 다른 국가들뿐만 아니라 중동과 남미로까지 퍼지면서 세계적 대유행, 즉 판데믹 우려도 급증하고 있다.
이탈리아 보건당국은 27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52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날 밤 마지막 집계보다 72명 증가한 수치다. 영국 BBC방송은 “이탈리아는 24시간 만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례가 25%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사망자는 2명 추가돼 총 14명으로 파악됐지만, 사망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국립고등보건연구소(ISS)에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이탈리아는 지난 21일 오전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3명으로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불과 1주일도 안 돼 528명으로 폭등했다. 그 배경으로는 ①최초 감염원인 ‘0번 확진자’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점 ②‘슈퍼전파자’ 관리 부실 ③대량 검사에 따른 신속한 확진자 판정 등이 꼽힌다.
◇아직도 못 찾은 0번 환자
이탈리아 당국은 이날까지 바이러스를 옮긴 이른바 최초감염자 ‘0번 환자’의 신원과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지에서 급속도로 퍼지는 코로나 사태의 시작점을 발견하지 못하니 구체적인 확산 경로도 파악할 수 없고, 잠재적인 확진자들이 계속 거리를 돌아다니게 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확진자 중 누구도 최근 중국 여행 경력이 없다는 점도 이탈리아 보건당국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다만 당국은 계속해서 역학조사를 진행하며 0번 환자를 추적 중이다.
◇‘골든타임’ 놓쳐 슈퍼전파자 만들었다?
이탈리아 검찰은 26일 유럽의 코로나19 대유행의 중심에 선 북부 롬바르디주 지역 내 병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롬바르디주 코도뇨시는 ‘1번 확진자’이자 ‘슈퍼 전파자’로 불리는 남성이 나온 곳이다. 검찰은 이 지역 병원이 1번 환자에 대한 검사가 제때 진행하지 않아 대량감염을 유발했다고 보고 있다.
당국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코도뇨에 사는 38세 남성은 지난 14일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방문했다. 하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16일, 18일에 병원을 다시 찾았지만 중국과의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를 받지 못했다. 다음날인 19일 새벽 3시쯤 호흡곤란으로 3번째로 병원을 찾았고, 이 남성의 아내는 남편이 최근 중국에서 돌아온 친구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36시간이 지난 20일 오후 4시쯤에야 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는데, 그동안 수많은 친구들과 가족이 자유롭게 그를 방문해 접촉했다. 또 검사를 받기 전 의사들과 4차례 접촉하기도 했다.
해당 병원에 지난 1월말 도입된 응급 건강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지침에 따르면 중국과의 명확한 관계가 없었더라도 잠재적인 의심환자로 분류돼 검사를 받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 직원 관리도 문제가 됐다. 가디언에 따르면 일부 병원 직원들은 이 남성이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반응을 보인 뒤에도 4시간이나 지나서야 모든 직원이 위험 경고를 전달받았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우리는 의무를 다했다. 양심을 건다”며 병원에 대한 비판을 반박했다.
◇대량검사에 따른 확진자 급증
이탈리아는 지난 21일부터 약 1만건의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에서의 확진자 급증이 엄청난 규모의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라고 설명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검사를 통해 무증상 감염자나 본인의 확진 사실도 모른 채 회복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한국의 확진자 급증을 설명할 때도 통용된다. 한국은 중국을 제외하고 다른 국가들보다 압도적인 규모의 감염자 검사를 하고 있어 외신들은 한국의 확진자 급증이 보건당국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진단검사, 투명한 정보공개를 이유로 꼽으며 평가하고 있다. 스콜 고틀립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지난 24일 트위터에 “일본은 겨우 1500명 정도를 검사했는데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승선자를 제외하고도 확진자가 146명이나 된다”며 “한국의 코로나19 보고는 매우 상세하다. 그들은 거의 2만명을 검사했는데 상당한 진단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