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답답한 세상이 와버렸어요.”
어느 대학생이 26일 페이스북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적은 글의 일부입니다. 고려대에 재학 중이라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뒤숭숭한 요즘 감염 우려 말고도 다른 걱정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입모양을 가려버린 ‘마스크’ 때문에 고충이 크다는 이 학생. 네, 그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그의 글은 “거리에 나가면 거의 모두가 마스크를 끼고 다닌다”는 말로 시작됐습니다. 감염 방지에 예방이 되니 마스크를 끼는 것은 참 좋다는 그는 “하지만 청각장애인 입장에서 너무 답답한 세상이 돼버렸다”고 털어놨습니다. 사람들의 입모양이 안 보이고, 마스크에 소리가 갇혀 웅얼거린다고요. 그래서 대화가 어렵다고, 외출할 땐 입을 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개강 이후였습니다. 학교 내에서 개강 이후 수업을 온라인 강의로 전면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정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는 덜컥 겁이 났다고 합니다.
‘자막 지원은 될까. 아니야, 거의 높은 확률로 자막은 없을 텐데. 그럼 화질은 좋을까. 입모양이 제대로 안 보이고 칠판 위 글씨들이 깨지면 어떡하지.’ 그는 “개강 전부터 고민이 많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고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안 한다고 해도, 만약 교수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강의를 진행한다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그는 강의 내용을 따라가기가 벅찰 터였습니다. 끝내 그는 “어떡하죠. 학교에서 특별한 대응을 안 해주면 저는 휴학해야 할까요. 등록금을 내고도 저는 수업에서 소외될 것 같아요”라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이 글에는 27일 오후 6시20분 기준 160여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생각도 못 했다” “이런 생각을 못한 내 자신이 짜증난다” 등 자신을 반성하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자막 지원이 되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주는 댓글도 있었고, 자신도 청각장애인이라며 공감된다는 글도 있었습니다.
가장 호응을 얻었던 것은 이 대학의 한 교수가 남긴 댓글이었습니다. 자신도 청각장애 학생을 세심히 배려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며 자책한 교수는 학교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요청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어느 부서에 어떤 요청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적어주기도 했고요. 학생들의 공간인 대나무숲에 나타나는 것이 반칙인 줄은 알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댓글을 달았다며 “나도 배려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당당히 요구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이 학생의 글은 “한 청각장애인의 걱정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문장으로 마무리됩니다. 외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은 건 저뿐일까요. ‘당연한 일’이 더는 누군가의 걱정이 아니길, ‘소외’라는 말이 그 누군가에게 낯설어지길 바라봅니다.
[사연뉴스]는 국민일보 기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풍성하게 살이 붙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반전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연의 흐름도 추적해 [사연뉴스 그후]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연뉴스]는 여러분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