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수백만원 손실나도 소독봉사합니다” 동자동 쪽방촌 방역하던 날

입력 2020-02-27 17:42 수정 2020-02-27 18:35
한국방역협회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을 예방하기 위해 건물 안에서 방역을 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집에 계십니까 어르신. 소독입니다. 나와주세요.”

성인 한 명이 지나가기도 좁은 복도를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10여개의 방 사이에 소독액 분사기를 든 방역업체 대표 박희열(52)씨가 나타나 문을 두드렸다. 흰색 보호복과 마스크, 고글로 무장한 박씨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불과 걸상, 외투 등에 소독약을 집중해 뿌렸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군데군데 곰팡이가 슬어있는 복도에도 소독약은 꼼꼼히 분사됐다. 곁에 있던 다른 직원은 발열 등 이상 증상이 없는지 주민의 체온을 재며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환기는 사치인 허름하고 좁은 건물을 긴장한 채 30분째 누비다 보니 박씨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흘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1700명을 돌파한 27일 한국방역협회 소속 업체 관계자 16명이 서울 중구 동자동에 위치한 쪽방촌을 찾아 방역 봉사활동을 했다. 손소독제나 마스크를 찾아보기 힘든 이곳의 위생은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었다.

방역 작업은 당초 계획보다 한 시간 넘게 지체됐다. 전국에서 코로나19 방역 수요가 늘어나면서 소독 약품이 동이 났기 때문이다. 원용남 한국방역협회 서울지회장은 “인체에 무해한 소독약은 공정 과정이 까다로워 생산량 자체가 적다”며 “현재 약품은 대구·경북 지역에 우선적으로 납품되고, 남은 분량을 두고 업체들이 사정사정하며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방역협회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을 예방하기 위해 방 안을 소독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방역이 진행된 쪽방촌에서는 바깥에서 품귀 현상을 빚는다는 마스크나 손소독제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주민들은 1000원짜리 물티슈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주민 변한석(60)씨는 “손소독제를 지급받지 못해 매일 지하철역까지 내려와서 비치된 손소독제를 쓰고 다시 올라온다”며 “무릎이 아파 왕복 30분 거리를 오르내리는 게 힘들지만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방역협회 관계자들은 생업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코로나19 전선에 뛰어들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진 이후 이들은 구청에서 약품 값 정도만 지원받으며 수십 차례씩 봉사 방역작업에 나서고 있다. 원 지회장은 “지원비로 약품을 사면 교통비 정도만 남는다. 식사도 우리 돈으로 한다”고 웃었다. 이렇게 봉사를 하는 날이면 업체당 하루 수백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방역 관계자들을 모이게 하는 것은 바이러스와 싸운다는 직업적 책임감이다. 방역업체를 운영하는 신금순(57·여)씨는 최근 하루 한두 시간 밖에 못 자면서도 스무 번 넘게 무료 방역에 나섰다. 신씨는 “인원은 부족한데 일이 몰려 피로가 상당하다”면서도 “지금 같은 비상시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방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전국 각지에서 코로나19 관련해 기부도 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냐”며 “우리도 그중 한 사람 정도로만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