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병상 부족…경증 환자 ‘체육관 임시병원’ 치료 대비해야

입력 2020-02-27 16:18 수정 2020-02-27 18:47
연합뉴스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을 받고 병상 부족으로 집에서 자가 격리 상태로 대기 중이던 74세 남성이 숨졌다.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고 있는 대구는 이처럼 입원할 곳이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수백명에 달해 병상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사망자를 줄이려면 병상 확보와 함께 환자 중증도를 ‘경증-중증-위중’으로 분류하고 ‘위중-중증’ 환자를 우선 선별해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상황이 심각한 대구는 기존 병원 병상 확보가 용이하지 않을 경우 경증 환자들을 실내 체육관이나 전시장 같은 공간에 모아 치료하는 ‘임시 병원’을 만드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27일 대구시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74세 남성이 이날 호흡곤란이 발생해 영남대병원으로 이송 도중 구급차에서 심정지가 왔고 병원 도착 후 사망했다. 코로나19 국내 13번째 사망자다.
그는 지난 25일 확진을 받았으나 병상 부족으로 집에서 입원 대기 상태였다. 신장이식 전력이 있는 그는 지병이 있음에도 대기 중 약물투여 등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했고 보건소는 전화 모니터링 정도만 해 왔다.

대구에서는 이처럼 확진을 받고도 입원 병상이 없어 치료 못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이날 오전 9시 현재 대구 확진자 1017명 가운데 447명만 입원 조처됐다. 나머지 환자는 병상 및 의료시스템 부족으로 자가격리 등 형태로 입원 대기하는 실정이다.

방역당국이 대구의료원 등 대구 지역 감염병전담병원(병원과 병동 전체를 비워 병상 확보)과 대전·충청권, 경남·마산권 등 공공병원들을 활용해 추가 병상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하루에 200, 300명씩 늘어나는 확진자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확진자들을 중증도에 따라 분류해 입원 치료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비효율적으로 병상 배치가 이뤄지다 보니 병상이 부족해 제때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대구는 신천지 관련자 진단검사와 역학조사도 필요하지만 제때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이 방치돼 사망자가 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병상이 부족해 집에서 자가격리 상태로 대기할 경우 격리 원칙을 지키지 않아 자칫 가족 등 주변인에게 2, 3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또 환자 수가 급증하다 보면 경증 환자로 진단됐어도 그 중에 중증 환자가 섞여있을 수 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증상은 굉장히 비특이적이고 증상만으로 중증도를 판단하기 어렵다. 겉으론 멀쩡하게 보여도 CT를 찍어보면 폐가 하얗게 보이는 폐렴이 진행돼 있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증의 경우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아 집에 대기하고 있다가 대량의 집단 전파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중국 보건당국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환자는 경증이 80%, 중증 16%, 위중 3%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이 같은 환자 분포가 똑 같이 나오리란 보장은 없지만 이에 맞춰 환자를 선별하고 위중한 환자부터 입원 우선 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중’ 환자는 호흡곤란, 고령자, 만성질환자, 나이는 젊지만 호흡곤란이 심한 환자들이다. 이들은 국가지정격리병상에서 우선 입원치료하고 꽉 찰 경우 상급종합병원(민간 대학병원 등)의 음압병상을 이용해야 한다.

폐렴이 양쪽에 있고 호흡곤란으로 산소마스크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종합병원이나 지역 공공병원(시·도립의료원) 등의 1인실에 입원 격리가 권고된다. 음압유지 병상이 있으면 그걸 활용하고 부족하면 일반 1인실에 ‘이동형음압기’(간이 음압유지 장치)를 설치해 운용하면 된다.
현재 음압병상은 국가지정격리병상(161병실, 198병상)을 포함해 지역 공공병원, 민간종합병원을 포함해 전국에 793병실, 1077개 병상이 갖춰져 있다. 국가지정격리병상의 가동율은 26일 오전 8시 기준 77.6% 이며 서울, 부산, 대구, 강원, 충북, 경북 지역은 100% 가동 중이다.

이에 따라 확진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경증 환자들을 위한 치료 공간 마련이 급선무로 등장했다. 경증 환자들의 경우 집 등에서 자가격리는 위험하다. 가족에 전염시킬 수 있고, 중증인데 경증으로 잘못 판단돼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대구 사망자 처럼 위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방역당국도 “경증 환자 자가격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고려대 김우주 교수 제공

급증하는 경증 환자들의 경우 실내 체육관이나 경기장, 전시장, 수련원 등에 ‘임시 병원’을 마련해 한꺼번에 모아 치료하는 방법이 제안됐다.

김우주 교수는 “침상을 2m 간격으로 띄워 늘어놓고 칸막이를 설치해 의료진이 여러명의 환자를 보살피는 형태”라면서 “중국 우한에서 시행했던 방식으로 환자 수가 급증해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는 대구는 보건당국과 협의해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김염내과 교수는 “아울러 우한 교민에게 적용됐던 시설 격리 치료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구의 국·공립 수련원, 훈련원 등을 병원처럼 바꿔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의료진이 상주하며 진료하고 치료제를 투여하며 경증 환자 중에서 중증 환자가 생기면 곧바로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임시 병원도 병상만 준비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의료진과 보호구 확보, 치료지침 마련 등 지원시스템이 완비돼야 한다”면서 “대구에선 어떤 식으로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확진자들 중에 추가 사망자가 나는 걸 줄이고 지역사회 전파 차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중국 우한처럼 1000병상 규모의 ‘간이 병원’ 시설을 새로 만드는 안도 제안됐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김 교수는 “국회에서 코로나19 3법이 통과돼 검사 거부시 처벌이 강화됐는데, 사실 이런 것 보다 대구·경북 등 의료 현장에선 입원 병상, 의료인, 보호구, 마스크 부족 문제를 해결해 주는게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