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의식 트럼프 “코로나19에 준비돼 있어” 자신감
미 국무부, 한국 여행경보 3단계(여행 권고)로 올려
캘리포니아선 ‘지역사회 확산’ 징후 확진자 등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한국·이탈리아에 대한 미국 입국 제한에 대해 “지금 당장은 적절한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때에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미국 입국 제한 조치가 우려됐던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단지 지금이 아닐 뿐 향후 한국에 대해 입국 제한 등 고강도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인들의 미국 입국 제한의 최대 변수는 한국의 향후 코로나19 피해 상황이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될 경우 미국은 빗장을 걸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코로나19가 수습 국면에 들어간다면 미국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미국 정부도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의식해 입국 제한 조치에 신중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이탈리아 등으로 가거나 그곳에서 오는 여행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가’는 질문을 받고 “적절한 때에 우리는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면서도 “지금 당장은 적절한 때가 아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적절한 때에…”라고 말끝을 흐리면서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한국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할 여지를 남겨뒀다. 그는 또 “한국과 이탈리아는 상당히 강하게 (코로나19) 타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26일 오후 6시(현지시간)에 가질 것”이라고 밝혔으나 백악관은 예정보다 30분 늦췄다. 코로나19 조치 내용을 놓고 트럼프 행정부가 장고에 빠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우리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모두 152만 1201명으로, 한 달 평균 19만 150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는데 주력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코로나19의 미국 내 확산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것은 매우 작은 규모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전날 미 보건당국이 미국 내 확산이 시간 문제라고 밝힌 것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코로나19 대응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지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위협과 관련해 미국인들을 안심시키려고 주력한 이유는 올해 미 대선 때문으로 풀이된다.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에 새로운 확진자들이 나오면서 미국인 확진자가 60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도 ‘마스크 부족’ 우려가 커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처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뉴욕 주식시장은 폭락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대처 노력을 부각시키면서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비난을 차단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앤 슈챗 질병관리예방센터(CDC) 선임 부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더 많은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앞으로 몇 주, 몇 달 간 궤적은 매우 불확실하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백악관은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25억 달러(3조원) 규모의 긴급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찰스 슈머 의원은 85억 달러(10조원)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 국무부는 이날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2단계인인 ‘강화된 주의 실행’에서 3단계인 ‘여행 재고’로 격상했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여행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권고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나흘 만에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한 단계 올렸으며 이제 4단계인 ’여행 금지‘만 남겨놓고 있다. CDC가 별도로 발표하는 여행보건경보도 최고 단계인 3단계(불필요한 여행 자제)에 있다.
델타항공은 한국행 여객편을 한시적으로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하와이안 항공은 ‘인천-호놀룰루’ 간 운항을 다음달 2일부터 4월말까지 중단했다.
캘리포니아 북부에서는 감염 경로를 파악할 수 없는 코로나19 환자가 처음으로 나왔다. 이 환자는 최근 중국 등 코로나19가 퍼지고 있는 나라를 방문한 적이 없으며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미 보건당국은 이 환자가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추적에 착수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사례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역사회에서 확산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징후”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