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는 마스크를 쓴 쇼핑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평일 오후다보니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카트마다 라면, 즉석밥, 냉동만두, 생수 등 생활필수품 위주의 상품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트 입구에서 소독제를 뿌리고 난 뒤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장을 보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왔다는 임모(50)씨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봤다. 임씨는 라면 10여봉지, 햇반 2상자, 컵라면 수십개, 쌀 20㎏짜리 2포대, 2ℓ 생수 40병, 냉동만두 6봉지, 육개장 미역국 등 레토르트 국제품 등 다양한 가정간편식(HMR) 제품 등이 담겨 있었다. 각종 과자에 고기까지 담은 임씨는 50만원이 넘는 금액을 결제했다.
장을 꽤 많이 본 것 같다고 하자 임씨는 “혹시라도 사재기로 오해할지 모르겠다”며 “중고생 3형제 키우는데 애들이 집에만 있다보니 많이 먹는다. 장보러 나오기도 쉽지 않으니 넉넉하게 샀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형마트의 생필품 구매가 늘고 있다. 임씨처럼 대량 구매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마트에 따르면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한 지난 19일부터 25일까지 즉석밥·라면·쌀·생수·통조림 등 주요 생필품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6~75%가량 증가했다. 즉석밥 36.9%, 라면 55.5%, 쌀 55.4%, 생수 37.5%. 통조림 75.6%로 1.5배 안팎씩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생필품을 포함해 전체 매출이 3~5%가량 증가했고, 홈플러스도 유입객과 생필품 위주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① 1주 이상 자체 자가격리…생필품 필요성 증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형마트 이용객과 매출이 증가한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임씨 사례처럼 최소 1주 이상 외출을 삼가고 가급적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생필품의 필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2주 동안 사용할 생필품을 구매하다보니 대량구매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까지 개학이 늦춰지면서 자녀들이 집에서 생활하게 된 점,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부 기업들도 재택근무 체제로 들어가면서 부모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 또한 길어진 점 등이 생필품 대량 구매의 이유로 꼽힌다.
이날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2주 동안 먹을 식품 위주로 장을 봤다는 신영은(53)씨는 “남편이 오늘부터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며 “외식을 하기도 그렇고 배달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식재료 위주로 장을 봤다”고 말했다.
② 온라인몰 폭주로 배송 지연…오프라인에서 직접 장보기
온라인몰에서 마스크 주문 취소 등을 겪거나 배송 지연을 겪은 소비자들이 배송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구매하는 것을 택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대형마트 뿐 아니라 집 근처 가까운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한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집 근처 슈퍼마켓을 자주 이용한다는 최모(42)씨는 “집 앞에 바로 슈퍼가 있어서 자주 다녔는데 요즘처럼 물건이 없는 적은 못 봤다”며 “쌀은 다 떨어졌고 라면, 생수, 냉동식품도 저녁 때 가면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많이 없어서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소규모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서주은씨(56)는 “처음에는 코로나19로 장사가 너무 안돼서 속상했는데 갑자기 쌀, 라면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며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이) 오나 안오나 기다리느니 집 앞에 나와서 사는 게 속편하다고 손님들이 이야기 하더라”고 말했다.
③ 일부 불안 심리로 사재기 영향
일각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불안 심리가 생필품 ‘사재기’로 이어지는 것으로도 분석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손님들이 마트에서 찾는 제품들을 보면 먹거리나 휴지, 샴푸, 세제 같은 생활용품이 많다”며 “가전제품처럼 단가가 높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은 여전히 판매가 부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불안 심리에 따른 사재기는 온라인을 중심으로도 퍼지고 있다.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재기라도 해야겠다”는 글과 “사재기를 하지 말자”는 글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는 “쌀을 몇십 킬로씩 사 놨다거나 라면으로 찬장을 가득 채웠다는 식의 글을 보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사재기를 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도 아니고 언제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재기에 동참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오프라인 유통업계에서는 뜻밖의 호황을 맞고 있지만 마냥 웃지만은 못 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필요에 따른 구매든 생필품 사재기든 적어도 1~2주 이상을 감안한 구매”라며 “한 동안 다시 마트를 찾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조심스럽게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