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선고 다음 날 이재용 재판장 기피 마음먹은 박영수특검

입력 2020-02-26 17:17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선고 다음 날인 지난 2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대한 기피 신청 방침을 굳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은 이 부회장 재판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증거를 양형 가중사유로 참작해달라”는 특검 주장을 최종 기각한 날이었다. 특검 관계자는 2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대로 가는 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검이 기피 신청을 하리란 예상은 일찍이 존재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 활동을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려는 조짐을 보였고, 특검은 “재판부가 ‘이재용 봐주기’ 명분을 쌓는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왔다.

특검이 재판부 기피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달 17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의 4차 공판기일이었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날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제도는)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 무관하다”는 지난해 첫 공판 때 발언과는 온도차가 있었다.

특검은 당시 “준법감시제도를 양형 사유로 보신다. 재판이 불공평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의견 잘 들었다”고만 답했다. 특검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및 증거인멸 관련 증거를 추가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특검 내부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을 때까지 해보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특검은 지난달 31일 재판부에 다시 이의제기가 담긴 의견서를 냈다. 앞서 재판부가 준법감시위 활동을 전제로 이를 점검하기 위한 전문심리위원단을 꾸리겠다며 공판준비기일을 추가하자 철회해달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었다.

그러자 재판부는 지난 6일 ‘공판준비명령’을 내려 공판준비기일을 미뤘다. 이어 특검과 이 부회장 측에 “준법감시제도가 양형 감경사유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보충 의견을 달라”고 했다. 특검은 이를 이 부회장 측에 명분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특검 관계자는 “특검에 대한 이 부회장 측 반박 의견을 달라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고 주장했다.

특검이 확신을 갖기까진 보름 남짓의 시간이 더 걸렸다. 결정적 기점은 지난 20일이었다. 이날 재판부는 삼성바이오 관련 증거를 제출하게 해달라는 특검 측 요청을 최종 기각했다. 특검은 내부 논의를 거쳐 지난 24일 재판부 기피를 신청했다. 특검 관계자는 “더 이상의 불복수단이 없었고, 최후의 카드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