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회의 날짜도 못잡는 방위비 협상, 왜?…“트럼프에게 보고도 못했다”

입력 2020-02-25 19:5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서부 지역 유세차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가기 위해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오르기 전 취재진에게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6차 회의의 상세 내용이 보고되지 않아 7차 회의 개최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협상단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체적 지침을 받지 못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 협상단은 지난달 중순 미국 워싱턴에서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6차 회의를 가진 이후 7차 회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에서 열린 5차 회의에서 분담금 총액에 관해 좁혀졌던 양측의 입장 차가 6차 회의서 다시 벌어진 것도 7차 회의 지연의 이유 중 하나로 알려졌다.

SMA 협상 상황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25일 “7차 회의 일정이 정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협상단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6차 협상 내용 보고를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협상 지침을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로 10차 SMA 유효기간이 끝나 협정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 미국은 11차 SMA 타결이 늦어지면 오는 4월부터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마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소식통은 “5차 회의 때 양측이 총액 부분에서 상당한 접근을 이뤘다”고 전했다. 5차 회의 때 한국 측은 지난해 방위비분담금 1조389억원에서 10% 안팎 인상된 수준의 총액을 제시했고, 미국 측의 강한 반발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협상 초기부터 총액 47억 달러(약 5조6900억원)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요구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한국 측 인상안에도 미국의 반발이 적었던 것이다. 이는 한국이 미국산 무기 구입 확대로 동맹에 대한 기여를 강화하는 대신, 분담금 총액은 한국 측이 수용 가능한 선에서 타협을 하려는 공감대가 생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측은 6차 회의 때 또다시 큰 폭의 총액 인상을 요구했다. 올해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유권자에게 방위비 증액을 확실한 성과로 내세우기 위해 대폭 증액을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6차 회의 종료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한국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 기고문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게재했다. 기고문에서 두 장관은 “한국은 한반도 미군 주둔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된 비용의 3분의 1만 부담한다”고 지적했다.

에스퍼 장관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알링턴의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의 회담에서도 방위비를 증액하라고 압박했다. 에스퍼 장관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증액은 미국에 있어 최우선 과제”라며 “한국은 방위비를 더 분담할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SMA 협상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예년보다 증가율을 더 높게 책정하고 있다면서 한·미 간에 인식차가 가장 큰 부분은 총액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인상률은 8.2%였다. 이 당국자는 한·미 국방장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부분이 워낙 크다 보니 갭(차이)이 있는 것”이라며 “한국의 다양한 안보 기여도를 설명하면서 인식차를 좁혀나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미국 측이 기본적으로 분담금 자체를 많이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상헌 손재호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