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뒤를 볼 여유가 없습니다. 앞만 보고 가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19일 추일승 전 고양 오리온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갑작스레 지휘봉을 잡게 된 김병철(47) 오리온 감독 대행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올 시즌 프로농구 최하위(12승 29패)로 처진 오리온이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앞장서겠다면서도 팀에 투쟁심을 불어넣겠다는 의지가 묻어났다.
김 대행은 25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추 감독님 사퇴 직후 팀 분위기도 어수선했고 나도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도 “그대로 있을 수 없어 선수단과 만나 경각심을 주는 한편 격려와 소통도 해 가면서 훈련했다. 지금은 좀 안정됐다”고 돌아봤다. 이어 “팀을 빨리 추스르고 어떻게든 변화를 줘 좋은 성과를 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새 사령탑이 구상하는 농구는 ‘공격’으로 요약된다. 김 대행은 “공격도 수비도 공격적으로 하려고 한다”며 “공격에서는 속공과 압박을, 수비에서는 도움 수비 등 적극적인 수비를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경기를 뛰는 건 내가 아니라 선수들이니 스스로 판단해 플레이해야한다”며 “하지만 욕심 부리는 것과 자신감이 있는 것은 다르다. 팀원이 더 좋은 찬스를 잡았다면 바로 공을 넘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행의 선임은 갑작스러웠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김 대행은 1997년 오리온의 전신인 대구 오리온스에 입단해 2011년 은퇴하기까지 오리온에서만 뛰고 영구결번(10번)을 받은 원팀맨이다. 이후 오리온 유소년 농구교실 감독직을 거쳐 2013년부터는 오리온 코치를 맡아왔다. 추 전 감독도 그에게 종종 작전 지시를 맡기는 등 본격적인 감독 수업을 했다. 김 대행은 “어제 추 감독님이 ‘무거운 짐을 맡겨 미안하다’고 하시면서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충분히 지금보다 팀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정규시즌 13경기를 남긴 오리온은 3할미만의 승률(0.293)로 최하위가 유력한 상황이다. 봄농구보다는 다음 시즌에 초점이 맞춰진다. 김 대행은 “시즌을 치르다보니 여러 포지션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며 “시즌 마무리를 잘 지어야 다음 시즌에도 좋은 경기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록 올 시즌은 1라운드 외국인선수 마커스 랜드리의 시즌아웃을 포함 주축선수들이 부상에 시달리며 부진했지만 오리온에는 이승현(28), 최진수(31) 등 실력 있는 국내선수들이 즐비하다. 다음 시즌은 기대해도 되겠냐는 질문에 김 대행은 “그렇다”고 답하며 “단 선수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상대와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선수들의 기본자세와 태도부터 바뀌어야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은 특정선수가 에이스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각이 돼서 궂은 플레이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24년째 오리온에 몸담은 김 대행이 지금 팬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미안함뿐이다. 김 대행은 “성적 부진에 정말 죄송하다”면서도 “앞으로 점점 팀을 변화시켜가며 팬들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농구를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잔여경기 목표를 묻자 김 대행은 “선수들에게 부담은 주고 싶지 않지만, 우리들에게는 여유가 없다”며 “승률 등 수치적인 목표를 잡고 가는 것보다 그저 앞만 보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김 대행의 감독 데뷔전은 26일 고양체육관 울산 현대모비스전이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