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미통과시 ‘긴급명령’?…1993년 금융실명제 때와 상황 달라

입력 2020-02-25 16:18

여당 추경 미통과시 ‘긴급명령권’ 단행 주장
대통령이 국회 건너 뛰고 명령할 수 있는 권리
헌법에 보장된 권리, 그러나 요건 까다로워
긴급명령 단행 후 국회 사후 승인 없으면 효력 무효
1993년 금융실명제 긴급명령은 ‘공개 논의’ 부작용 때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정치권이 추가경정예산은 물론 긴급재정경제명령권까지 요청하고 나섰다. 추경의 국회 통과가 늦어지면 긴급명령권을 발동하자는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긴급명령은 대통령이 국회를 거치지 않고 재정·경제상 처분과 법률 효력을 명령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태의 심각성은 알지만 긴급명령은 섣부른 요청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993년 단행된 ‘금융실명제’ 긴급명령과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당정청 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의 국회 통과가 지체되면 긴급재정명령권이라도 발동해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당이 추경 뿐만 아니라 긴급재정경제명령권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리다. 헌법 제76조는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단행하면 국회를 건너 뛰고 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 과거 긴급명령이 발동된 적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때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금융실명제를 국회 통과를 건너 뛰고 시행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헌법 제76조의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 공공의 안녕질서’를 근거로 꼽았다.

만약 이번에도 긴급명령이 단행된다면 헌법 제76조의 ‘천재지변, 재정·경제상의 처분’ 등이 근거가 될 수 있다. 재정·경제상의 처분 조항 때문에 추경 같은 예산의 집행도 적용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시행은 어려움이 많을 전망이다. 헌법에 명시된 조건들이 다 맞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첫 번째, 코로나19를 ‘천재지변’을 볼 수 있을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라는 조항에 대해서도 반발이 나올 수 있다. 현재 야당도 추경 편성을 찬성하고 있다. 국회를 건너 뛸 만큼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1993년 때와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발동한 건 국회의 반대 때문이 아니다. 금융실명제는 실시 계획 유출시 곧바로 은행예금 인출 사태 등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국회의 공개적인 논의에 따른 부작용이 커서 긴급하게 바로 시행할 수 있는 긴급명령을 발동했던 것이다. 실제로 긴급명령은 단행 후 국회의 사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여야 모두 승인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추경을 야당의 반대를 고려해 긴급명령으로 단행한다면 향후 ‘사후 승인’도 진통을 겪을 수 있다. 국회 사후 승인이 안되면 긴급명령은 또 효력을 잃는다. 헌법 제76조는 3~4항에 “대통령은 제1항과 제2항의 처분 또는 명령을 한 때에는 지체없이 국회에 보고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 제3항의 승인을 얻지 못한 때에는 그 처분 또는 명령은 그때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이 경우 그 명령에 의하여 개정 또는 폐지되었던 법률은 그 명령이 승인을 얻지 못한 때부터 당연히 효력을 회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입법학회장을 역임한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긴급명령권은 한 번 밖에 발동된 적이 없고 요건이 까다롭다”며 “지금 상황을 천재지변으로,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수 없는 상황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권은 여러 가지 주장을 할 수 있지만 법적 요건에 해당되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현재 야당도 추경을 찬성하고 있고, 긴급명령 외 다양한 수단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무리한 선택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