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시에 전세기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탑승을 원하는 분은 알려주세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거주하는 이란 출신의 시나 카라미(Sina Karami·29)는 지난달 문자 한통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역으로 확산되자 이란 대사관에서 교민들에게 전세기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이란 교민들의 채팅방에는 질문들이 쇄도했다. “언제쯤 전세기에 탑승할 수 있나요?” “어떻게 신청하면 되나요?” “몇 명 정도 수용 가능한가요?”
하지만 시나는 우한에 남기로 결정했다. 대신에 그는 7명의 바리스타 친구들과 뭉쳤다. 그는 지난달 25일부터 매일 아침 커피숍에 모여 커피 500여잔을 준비했다. 직접 만든 커피는 차량에 실어서 우한시에 위치한 병원에 무료 나눔을 하고 있다.
그가 이란에 돌아가지 않고 먼나라 중국의 우한에서 커피 봉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일보는 그의 사연을 듣기 위해 지난 21일 중국 SNS인 위챗으로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이날 역시 커피 나눔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던 그는 쉬는 시간인 오후 1시(현지시간)가 돼서야 잠시 짬을 내 인터뷰에 응할 수 있었다.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시나는 우한에 남게 된 이유와 더불어 현재 중국 우한의 모습을 담담히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란에서 온 시나 카라미입니다. 저는 중국 우한에 있는 와칸다 커피숍(Wakanda Youth Coffee Shop)에서 바리스타 겸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2년 전에 동생과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그동안은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코로나19 발생 이후, 동생은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2년 전 중국에 오게 된 계기는
“저는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동생이 복싱선수인데, 예전에 중국을 다녀오고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죠. 새로운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어요. 원래 이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는데 곧바로 중퇴하고 우한에 왔습니다.”
-코로나19 이후에 우한에 남은 이유는
“중국에서 2년 동안 생활하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제가 외국인이라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중국 사람들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 반갑게 맞이해줬어요. 그렇게 점점 이 나라 문화에 애착을 가지게 됐죠. 항상 상대방을 예의있게 대하는 모습도 좋았고요. 중국에 남아서 제가 받은 만큼 주변 중국인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가족들의 우려가 컸을텐데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올 수는 없냐’고 계속 문자가 와요. 그래도 여기에 남고 싶다고 제 뜻을 전했어요. 다행히 동생이 이란에 돌아간 뒤에 제 안부를 잘 전하고 있어서 부모님도 이전보다는 안심하는 것 같아요.”
-커피 무료 나눔을 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커피 가게가 하나, 둘 문을 닫는 것을 보게 됐어요. 커피 한잔도 마음 편하게 구하지 못한다는 게 참 안타깝더라고요. 그러다 중국인에게 커피 한잔을 무료로 드린 적이 있는데 정말 행복해 하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보람을 많이 느꼈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를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피숍 직원들에게 커피 나눔 봉사를 제안했고 다들 흔쾌히 따라와줬어요.”
-커피 나눔 사업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지금은 7명의 바리스타들이 팀을 꾸려서 지난달 25일부터 나눔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커피를 만드는 팀, 제작에 필요한 물품 준비 팀, 직접 전달하는 팀 등 3가지로 역할 배분을 했어요. 보통 오전 8시 반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후 5~6시에 마치는 편이에요. 오전 시간에는 커피를 준비하고 오후에 본격적으로 커피를 나눠줘요. 우한시에 병원 3곳이 있는데 하루 500잔씩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매일 커피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 우한 의사, 간호사들의 반응은
“병동 내부에는 출입이 금지돼서 저희는 병원 주차장에서 커피를 전달해요. 항상 방역복과 마스크를 입고 저희를 반겨주세요. 잠도 못 이루고 힘들 법도 한데 항상 미소를 지으시더라고요. 그리고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해주세요. 의사, 간호사분들이야 말로 바이러스 최전선에서 함께 싸우는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희가 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커피 나눔 사업과 관련해 후원도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커피 나눔 사업을 시작한 지 20일 만에 저희를 후원해주는 사람들이 등장했어요. 몇몇 중국인들이 저희 7명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거죠. ‘시나와 커피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펀딩 모금액은 120만 위안(약 2억400만원)을 넘어섰어요. 조그맣게 시작한 나눔 사업이 이렇게 중국 전역에서 화제를 모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펀딩으로 모은 돈은 나눔 사업에 필요한 재료 구입과 병원 후원금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후원금을 기부한 분들께 감사함을 표하고자 커피컵을 제작해서 후원자분들의 이름을 적어 선물하고 있어요.”
-이 소식을 접한 이란 현지인들의 반응은
“최근 이란에서 제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보도했어요. ‘이것이 바로 이란 고유의 민심이다’ ‘이란 사람에게서 인류애가 돋보였다’ 등 자국을 빛낸 시민으로 적혀있더라고요. 원래 이란의 문화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데 익숙해요. 또 위기에 직면했을 때 서로의 힘을 합치는 공동체 의식이 있죠. 이란 국민의 정서를 타지에서 발휘할 수 있어서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중국 우한의 현지 분위기는
“길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녀요. 가끔 두꺼운 옷을 과도하게 껴입은 사람도 보이고요. 우한시에 있는 식당이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커피숍도 운영을 중단했어요. 학생들은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태이고 직장인들도 거의 재택근무로 일한다고 들었어요. 그나마 슈퍼마켓들은 문을 열었는데 생필품을 사러 나온 사람들도 몇 명 안돼요.”
-마스크나 생필품을 구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그래도 필요한 물품은 시내에서 다 살 수 있는 정도입니다. 마스크도 크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병원에도 마스크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고 들었고요.”
-우한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두려워하고 있는지
“처음 2주 동안은 두려워하는 모습이 확연히 보였어요. 혹시나 감염되지 않을까 많이 걱정하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좀 누그러졌어요. 시민들이 같이 연대하면서 이겨나가려는 것도 있고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도 보여서 처음보다는 분위기가 나아졌어요.”
-중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건물마다 경찰 인력이 배치되서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체온측정을 해줘요. 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보들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고요. 그래도 시민들에게 여러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지금 커피 나눔 사업과 관련해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라 코로나19 종식 이후의 계획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일단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합치는 데에만 집중할 겁니다. 바라건대 한두달 안에 사태가 진정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한시 상황은 빠른 시일 내에 나아질 거에요. 사람들이 우한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지 않았으면 해요. 물론 감염자들의 수가 적진 않지만 현지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저희도 쉴틈없이 커피를 나눠주고 있고요. 모두 꿋꿋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시로 손발을 씻고 마스크를 쓰는 등 의사들이 권고한 수칙만 지켜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지은·김영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