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령 국가 정상’인 마하티르 모하맛(94) 말레이시아 총리가 24일 압둘라 국왕에게 사임 의사를 밝혔다. 갑작스러운 사임 의사 표명에 총리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두고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마하티르 총리의 사임서 제출 후 말레이시아는 다시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마하티르의 사임 발표는 그가 지난 주말 당초 후계자로 지명했던 안와르 이브라힘(72) 인민정의당(PKR) 총재를 배제한 채 새 정부 구성 방침을 밝힌 뒤 이뤄졌다. 마히티르 총리의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PPBM)은 PKR과의 집권 연정에서도 탈퇴했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 등은 마하티르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은 안와르에게 총리직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무효로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연정을 해체한 뒤 여권을 다시 짜서 안와르에게 정권을 넘기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마하티르는 1981년 총리직에 올라 2003년까지 22년간 장기집권한 인물이다. 이후 15년만인 2018년 5월 집권여당을 누르고 다시 총리에 취임했다. 안와르의 협력이 총선 승리에 큰 도움이 됐다. 안와르는 한때 마하티르의 오른팔이었으나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대책을 두고 갈등을 빚다 실각했다. 당시 마하티르 정권은 안와르가 실각된 이유에 대해 동성애 및 부패혐의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하티르가 숙청을 위해 누명을 씌웠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는 해당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실제 장기 복역했다.
복역 후 말레이시아 야권의 실질적 지도자로 성장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안와르는 지난 총선을 앞두고 마하티르와 극적으로 화해하고 함께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고령인 마하티르가 2~3년만 총리직을 수행한 뒤 권좌를 넘겨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실제 마하티르는 올해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무리하고 총리직을 이양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에서 마하티르의 본심은 안와르가 아닌 아즈민 알리(56) 경제부장관에 있다는 소문이 계속됐다.
마하타르의 사임이 정치적 꼼수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안와르 역시 그의 배신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와르는 전날 마하티르의 PPBM과 PKR 내부 안와르 반대파들이 새로운 연정을 꾸리기 위해 야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고 폭로했다.
새 연정 출범 후 누가 차기 총리에 오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먼저 압둘라 국왕이 의회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마하티르 총리의 사직서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국왕의 거부로 집권 정당성을 재확보한 마하티르가 잔여 임기를 마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완 아지자 완 이스마일 부총리가 역대 최초 여성 총리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