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감염병 위기 경보를 결국 최고 수위인 ‘심각’ 단계로 상향 발표한 것은 그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천지 신도들을 중심으로 감염자가 폭발적인 확산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현 ‘경계’ 단계의 대응으로는 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회의에서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신천지 집단 감염 사태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 대응 변화를 촉발한 것이 ‘신천지 집단 감염’에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위기 경보는 ‘경계’ 수준을 유지하되 실질적 대응은 ‘심각’ 단계에 준해 조치해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신천지 집단 감염은 상황을 크게 악화시켰다. 확진자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속출하고 있고, 사망자도 이어지는 상황에서 위기 경보를 ‘심각’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여기에다 이스라엘이 한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하고, 미국도 한국에 대한 여행 권고를 상향 조정하면서 외국에서 한국을 코로나19 위험국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22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오후 늦게 예정에 없던 대국민담화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히면서, 위기경보 ‘심각’ 상향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범정부대책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직접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발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심각’ 단계를 발령한 것은 2009년 신종플루 사태 이후 11년만이다.
문 대통령의 모두발언에서도 내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긴박감이 묻어났다. 문 대통령은 “정부와 지자체, 방역 당국과 의료진, 나아가 지역주민과 전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총력 대응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이라며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전례 없는 강력한 대응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중대한 분수령” “엄중한 위기 상황”이라는 표현도 썼다.
문 대통령은 신천지와 관련해 “대구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자체들이 신천지 시설을 임시폐쇄하고, 신도들을 전수조사하며 관리에 나선 것은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당연하고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종교 활동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것이다. 신천지 신도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며 “신천지교회와 신도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급증한 대구를 향해선 “국가와 국민 모두가 여러분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특별히 대구시민들과 경북도민들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는 대구와 경북의 위기를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국가적 역량을 모아나가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된 대구에 방역을 물론, 사회·경제적 피해 지원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범정부 대책회의에는 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관계부처 장관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시도지사들도 화상으로 연결돼 회의 내용을 공유했다. 회의실 입구에는 손 소독제와 마스크가 비치됐고, 참석자들은 회의실에 입장 전 체온을 검사했다. 국민의례도 생략한 가운데 엄중한 분위기로 진행된 회의는 2시간 10여 분 동안 이어졌다.
임성수 박세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