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둘러싸고 소셜미디어에서 퍼지는 음모론들의 정체를 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허위 정보를 유포해 미국에게 타격을 입히려고 한다는 미국 측 주장에 대해 러시아가 발끈하고 나섰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2일(현지시간) 자국이 SNS를 이용해 코로나19 관련 허위정보를 유포해 미국의 국제사회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는 미 국무부의 비판에 대해 “고의적으로 조작된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앞서 미 국무부 관료들은 러시아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 공간에서 수천 개의 가짜계정을 활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포 배후에 미국과 서방세계가 있다’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확산시켰다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 산하 단체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 칠레 반정부 시위 등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던 사건들에서 러시아측 입장을 전하며 국제 여론을 호도했던 수천 개의 가짜계정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이 코로나19라는 생물무기를 만들어 중국을 공격했다는 음모론이 반복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작성됐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무부의 필립 리커 유럽·유라시아 차관보 대행은 이 같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해 “은밀하고, 강압적이며, 악의적인 내용의 작전”이라며 “미국의 기관들과 동맹국들 사이 불화의 씨앗을 뿌려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도록 만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AFP통신도 “공중보건 문제에 대한 우려를 악용해 미국의 국제사회 위상을 손상시키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음모론이 광범위하게 번질 경우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사회 공조를 어렵게 만들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의 전염병 대응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연계 SNS 계정들이 코로나19 음모론들을 퍼뜨리는 방식은 과거 소비에트연방(소련·러시아의 전신) 정보당국이 벌였던 심리·정보전의 행태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소련 공산당은 1980년대 국가안전위원회(KGB)를 통해 미국 과학자들이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유발하는 HIV 바이러스 만들어 전세계로 퍼뜨렸다는 음모론을 만들어 국제사회에 널리 확산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