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낸 줄 몰랐다”는 트럭운전사…대법 “사고 후 조치 의무 있어”

입력 2020-02-23 11:49

접촉사고를 ‘타이어 펑크’로 오인한 피해차량 운전자가 갓길에 정차한 뒤 뒤쫓아 가지 않았더라도 가해차량 운전자에게 ‘사고 후 미조치’ 혐의가 적용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가해차량은 원활한 교통 확보를 위한 후속 조치 의무가 있는데, 피해차량의 추격이 없었다고 해서 이 같은 의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과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법 강릉지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원심이 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을 파기한 것이다.

A씨는 2018년 5월 덤프트럭을 운전하던 중 차선을 변경하다가 옆 차로에서 주행 중이던 승용차 뒷부분을 충돌한 뒤 도주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접촉 사고 직후 피해차량 운전자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A씨 차량을 추격하지 않았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고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덤프트럭 적재물이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충격음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1심은 A씨가 사고 발생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 도주치상과 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모두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도 A씨가 사고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고 도주치상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사고로 인해 차량이 파손되지 않아 도로에 장애물이 없었고, 피해차량이 타이어 펑크로 생각해 가해차량을 추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점 등을 종합하면 A씨의 사고 후 조치 의무는 없었다”며 벌금 300만원으로 감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고로 피해차량 운전자와 동승자가 상해를 입었고 차로와 갓길 사이에 정차했다. 추격하지 않았다거나 추격 과정에서 교통상의 구체적 위험이 없었더라도 사고로 인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심에 도로교통법 위반에 관한 법리 오해가 있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