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36)을 살해하고 사체를 잔인하게 훼손·은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씨(37)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의붓아들(5) 살해 혐의에는 무죄가 내려졌다. 법원은 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법정 경위를 평소보다 두 배 가량 늘리는 등 재판정엔 초반부터 긴장감이 돌았으나, 판결 직후 방청석에는 정적만 흘렀다. 이번 판결로 아들의 사망 가해 주체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게 된 친부 홍모씨(38)는 한동안 법정을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20일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정봉기)는 전남편 살인과 사체 손괴, 은닉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잔인한 범행을 구체적으로 계획해 실행하고, 천륜인 아들과 친아버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이 단절시켰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죄질이 대단히 불량하다”며 “이번 범죄의 잔혹성과 중대성, 유족의 슬픔, 사회에 미치는 파장, 양형 기준을 고려해 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고유정은 전남편을 죽이기는 했으나 성폭행을 하려 하자 들고 있던 식도로 한 차례 찔렀을 뿐, 카레에 졸피뎀 성분을 넣어 의도적으로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 대부분이 피해자의 것인 데다, 혈흔 형태가 정지이탈흔으로 고유정이 재차 칼을 반복해 찌르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 점, 고유정의 몸에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는 점이 수면제를 먹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판단했다.
범행 시기가 5월인데도 배추 15포기가 들어가는 김장용 비닐을 25장이나 구입하고 이중 17장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범행 방법과 밀접한 검색어가 전남편과 아들의 면접교섭이 확정된 다음 날부터 고유정이 배를 타고 제주로 들어온 날사이에 집중된 점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고 봤다.
고유정이 청주에서 산 감기약과 수면제 중 전남편 혈흔에서 나온 졸피뎀 성분의 알약만 없어진 점, 다수의 압수물 중 해당 약봉지가 들어있던 파우치를 특정해 압수 여부를 현 남편에게 물었던 점 등도 고유정의 계획된 살인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봤다.
피해자 사망 3일 뒤 자신이 탈 배의 갑판과 감자탕 뼈 음식물 쓰레기, 뼈 무게, 뼈 강도 등을 검색한 것도 사전에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검색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고유정의 아들이 일부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하는 듯한 진술을 했지만, 당시 만 4세에 불과한 아들이 직접 본 것과 사실을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 수 있다며 신빙성 있는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면접 당일 제주시의 한 마트 앞에서 전남편과 펜션으로 가지 않고 헤어지려 했었다는 고유정의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시간이 면접 마감 시간을 1시간 30분가량 남겨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2년 만에 어렵게 아들을 만난 피해자의 행동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정황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피해자를 처음부터 유인한 것으로 보이며, 계획된 범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유죄를 판결했다.
반면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친아빠(현 남편)와 함께 자다 질식사한 의붓아들의 경우 친아빠 홍씨가 수면제를 먹었는지가 쟁점인데, 두 차례에 걸친 국과수의 모발 감정에서 독세핀 성분이 나오기는 했으나 홍씨의 모발이 짧아 분절 감정을 하지 못 해 독세핀 섭취 시기를 단정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특히 고유정의 전남편 살해에 비추어볼 때 의붓아들을 살해하려 했다면 더 많은 검색 기록 등 흔적이 있었을 것이 상식적이라고 추정했다.
피해자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또래보다 상당히 왜소하고, 당시 먹은 약이 수면을 유도할 수 있으며, 함께 자던 친아빠에 의해 눌렸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홍씨의 수면검사에서 이상 잠버릇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홍씨가 그 전에 복용한 항우울제 등의 성분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어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고씨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데 의붓아들이 걸림돌이 됐다는 검찰 측 주장은 증거없고, 고씨가 제주의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던 자신의 친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어린이집에 그만둔다고 말을 했던 점에 미뤄 아들을 청주로 데려오는 데 소극적이었다고도 볼 수 없다며 공소장의 살인 동기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간접사실로 살인이 인정되려면 간접사실들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하고, 과학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법리”라며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재판에서 의붓아들 살해 무죄가 최종적으로 선고되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친아빠 홍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홍씨는 판결 후 재판정을 나오며 “열흘 후면 아이가 죽은 지 1년이 되는데, 어디서 진실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고유정이 무죄라면 저는 아빠로서 제 아이가 죽은 이유조차 모르는 사람이 된다”고 눈물을 흘렸다. 홍씨의 변호인은 “초동 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청주)경찰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고 배상을 요구하겠다”고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다.
한편 고유정은 지난해 3월 1일 충북 청주의 아파트에서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해 5월 25일 제주시 한 펜션에서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및 은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