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어산지에 뒷거래 제안 “러시아 게이트 덮어주면 사면”

입력 2020-02-20 15:54
지난달 13일 런던 웨스트민스터법원에 출석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게이트’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물밑 사투를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에게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부인해준다면 사면해주겠다는 거래를 제안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영국 BBC 등은 19일(현지시간) 어산지의 법정변호사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런던 웨스트민스터지방법원에서 열린 송환 예비심리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고 보도했다. 피츠제럴드는 어산지 변호인 제니퍼 로빈슨의 진술을 인용해 트럼프의 지령을 받고 2017년 어산지를 직접 방문한 데이나 로러배커 전 미 공화당 하원의원이 그에게 사면 거래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당시 어산지는 미 정부에 정부 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기 위해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에서 도피 생활을 하고 있었다.

로러배커는 구체적으로 어산지에게 지난 2016년 미 대선 때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민주당전국위원회(DNC) 해킹 자료의 출처가 러시아가 아니라고 증언해주면 송환을 면하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유출된 DNC 자료 내용을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는 소재로 악용했고 실제 효과도 거뒀다. 이후 미 수사당국은 러시아 측 해커들이 DNC 서버를 해킹했고 이를 통해 얻은 자료들을 위키리크스로 전달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 정보당국도 힐러리의 대외정책 기조에 부정적인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를 당선시키기 위해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어산지 사면 제안의 전달자로 알려진 로러버커 전 의원이 친러시아 성향의 정치인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CNBC방송은 “로러버커는 푸틴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미국 하원의원으로 불린다”고 전했다.

어산지 측은 이날 법정에서 트럼프 측에서 사면 제안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로 채택해달라고 요구했고 송환 심리를 주재한 버네사 바레이터 판사는 이를 수용했다. 법정 밖에서는 어산지를 미국으로 송환하지 않고 석방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어산지가 미 법무부 요구에 따라 미국으로 송환돼 그가 받고 있는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대 17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통성을 흔드는 민감한 폭로에 백악관은 즉각 반발했다. 스테퍼니 그리셤 대변인은 “완전한 날조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DNC에서 또다시 제기된 끝없는 사기”라며 민주당을 공격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