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규제’ 파격 공약, 親금융 블룸버그의 속내… 샌더스·트럼프 양쪽 노려

입력 2020-02-19 17:09
2020년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지난해 12월 21일 미시간주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의외의’ 월가 규제 공약이 나왔다. 이미 민주당에서 수차례 거론된 월가 규제가 의외인 건 이를 공약한 인물이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기 때문이다. 전형적 ‘친(親) 월가’ 행보를 보인 블룸버그 전 시장이 금융권 규제에 앞장 선 데는 중도층뿐만 아니라 당내 핵심 지지층인 진보 유권자도 포섭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는 ‘이해충돌’ 비판을 받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대통령이 되면 블룸버그통신을 매각하겠다고도 밝혔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18일(현지시간) 금융 규제 관련 공약을 발표했다고 AP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보도했다. 그는 성명에서 “금융시스템이 대부분의 미국인을 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월가 규제 공약을 내놨다.

우선 볼커룰(Volcker rule) 강화가 눈에 띈다. 볼커룰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만든 금융규제 정책 ‘도드-프랭크법’의 부속조항이다. 금융기관이 고수익을 위해 리스크가 큰 파생상품이나 헤지펀드 등에 투자하는 자기자본 거래를 규제하는 것이 골자다. 제안자인 폴 볼커 전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이름을 따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완화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규모 은행들의 60일 이내 단기거래를 자기자본 거래로 간주한다는 볼커룰 규정을 폐지했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규제 완화의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재무부 금융조사국의 예산을 확대하고, 0.1% 세율의 금융거래세를 도입하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청년의 학자금 부담을 덜기 위해 소득 기반 상환제도 내걸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그간 월가 금융권에 친밀한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이번 공약은 파격으로 여겨진다. 그는 뉴욕 시장 시절 “볼커룰은 근시안적”이라며 금융규제 강화를 비판했고, 세계적인 금융미디어그룹 블룸버그통신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현지 언론들은 외연을 넓히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WSJ는 “민주당의 기반인 학생과 소수자 진영을 대변하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이날 NPR라디오·PBS뉴스아워·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가 공동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19% 지지율을 얻어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버니 샌더스 의원(31%)이다. 그간 중도를 표방해왔다면, 규제 공약으로 진보 색채를 보완해 샌더스 의원과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자신 소유의 블룸버그통신 지분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팀 오브라이언 블룸버그 선거캠프 고문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이같이 전하며 “우리는 금융 이해충돌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180도 반대편에 서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에도 호텔·부동산 등으로 이윤활동을 벌여 이해충돌 지적이 이어져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른 블룸버그 전 시장을 견제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마이크가 하는 짓은 대규모 불법 선거 자금을 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상대로 꼽히는 샌더스 의원과 맞붙기 위해 블룸버그 전 시장을 깎아내리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트위터에 “당신은 왜 그렇게 버니와 맞붙고 싶어하냐?”고 맞대응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