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 최 “무대 공포증 따위… 봉준호 통역은 특권” 후일담

입력 2020-02-19 16:41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당시 시상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왼쪽)과 그의 통역사 샤론 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의 ‘언어 아바타’로 유명세를 얻은 통역사 샤론 최(한국명 최성재·27)가 장장 10개월간 이어진 아카데미(오스카) 레이스 후일담을 전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서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부터 봉 감독의 통역을 맡은 샤론 최는 “마침 남프랑스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차에 칸에서 이틀간 외신 인터뷰를 통역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참석했다가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는 순간을 무대에서 함께하게 됐다”면서 “지난 6개월간 나는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허니레몬티를 달고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존경하는 감독님의 말을 잘못 전달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늘 싸워야 했다”면서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치료법은 무대 뒤에서 10초간 명상을 하는 것뿐이었다. 관객들이 보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통역하는 동안에는 오직 그 순간만 존재했다. 기억을 재빨리 지워나가며 다음 말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학도로 영화감독 지망생인 샤론 최는 “봉 감독과 함께 한 모든 여정이 특권이었다”고 고백했다. 봉 감독의 인터뷰를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 “카메라, 공간, 캐릭터 등 신성한 삼위일체에 관한 마스터 클래스를 수강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또 “팀원 및 배우들과 일대일 관계를 맺게 된 게 가장 큰 선물”이라며 “이들과 다시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성장한 샤론 최는 초등학교 시절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에서 2년을 살았고, 미국의 한 대학에서 영화예술 미디어학을 전공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나는 이상한 ‘하이브리드’가 돼버렸다. 미국인이라기엔 너무 한국적이고, 한국인이라기엔 너무 미국적이었다. 통역사가 직업이었던 적은 없지만 지난 20년간 나 자신의 통역사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제 남은 일은 나 자신과 영화 언어 사이를 통역하는 것”이라며 “사고의 유연함이 ‘기생충’을 현재의 위치로 이끌었고, 공감을 만들어냈다. 내가 이야기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덜 외로움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얘기했다.

샤론 최는 “이제 노트북 앞에서 나와 영화 언어 사이에서 번역할 일만 남았다”면서 “SNS에서 내 이름을 해시태그로 넣은 비아그라 광고를 발견한 적도 있고, 뷰티 광고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에 내 이름 옆에 뜨는 광고는 내가 만든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