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보다 주식 보유 많은 자산구조 변화도 한몫
부동산폭등 부추긴 스웨덴 마이너스금리 정책은 타산지석
2001년 9·11 테러 사태로 얼어붙은 전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정상을 되찾는 데는 얼마 가지 않았다. 세계 금융대통령으로 불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의 마이더스 같은 통화정책 덕분이다.
당시 미 연준은 요즘은 상상못할 수준으로 금리를 깎아 얼어붙은 금융시장에 불을 지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벤 버냉키 의장이 등장해 금융시장에 융단폭격 하듯 돈을 마구 뿌려댔다. 정책금리가 제로 상태까지 내려가자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채권매입 정책까지 동원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살포했던지 그에겐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중앙은행의 구세주 역할에 대한 기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2020년에도 여전하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지내다 지난해 11월 유럽중앙은행으로 갈아탄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기후변화위기까지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으로 극복해 낼 수 있다며 중앙은행 맹신주의에 빠져 있을 정도다.
지난 17일 중국 인민은행이 1년 만기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대출 금리를 0.1%포인트 인하하자 주식시장이 일제히 상승한 데서도 그 기대치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 뒤인 18일 애플사가 중국 생산공장 가동 지연을 이유로 완제품 공급 차질 우려를 내비치자 주식시장은 다시 고꾸라졌다.
악재와 희소식이 나올 때마다 일희일비하는 형국이지만 중앙은행 역할이 9·11 테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만 못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7일자에 2000년대 이후 위기시 중앙은행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물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릴 때 자산가격의 변동을 초래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금리를 낮출 경우 투자를 활성화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의 소비를 앞당겨 쓰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기본적인 통화부양 정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게 FT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세탁기 심지어 주택 등 내구재 소비의 경우 통화정책에 의미있는 분야로 통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내구재가 최소한 미국 등 부유한 나라에서는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게 이유다. 게다가 부유층의 경우 부동산보다는 주식 등에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산구조의 변화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금리와 저축의 전통적인 관계도 깨져버렸다. 독일 등 몇몇 유럽국가에서는 금리와 저축이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최근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비자들은 금리가 더 내려갈 것을 예상해 오히려 소비를 줄일 것이라는 분석으로, 은행에 돈을 맡김으로써 생기는 손실이 소비를 늘릴 때 보다 더 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 10여년간 유지돼 온 저금리 정책이 한몫하고 있다
코로나19 같은 충격이 왔을 때 10년여 전 만해도 기준금리를 5%포인트 이상 인하했으나 이제는 그 정도로 금리인하 인심을 쓸 여력이 안 되는 것도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최근 스웨덴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실패다.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방크는 경기 부축을 목적으로 2015년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이 정책을 도입했지만 개인들은 저금리로 빌린 돈으로 부동산만 사들이는 바람에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이로 인해 소비가 늘어나거나 생산적인 부분으로 돈이 투입되기는커녕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되는 투기만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릭스방크는 지난해 12월 -0.25%인 기준금리를 0%로 되돌려 놓았다.
최근 만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코로나 대책 관련 중앙은행의 수단은 한정돼 있다”고 토로한 것도 일련의 고민을 엿보게 한다.
오는 20일 중국 인민은행의 통화정책 회의 결과와 일주일 뒤인 27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 여부보다 이들 중앙은행의 충격에 대한 ‘스탠스’가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