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전담 통역사로 활약했던 샤론 최(한국명 최성재)가 미국 연예매체에 영화 ‘기생충’과 보낸 지난 10개월간의 여정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샤론 최는 19일 버라이어티에 봉준호 감독과 함께 일하게 된 사연, 칸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느낀 감정, 자신이 영화감독으로서 구상 중인 작품에 대한 생각 등이 담긴 에세이를 기고했다. 그가 언론에 자신의 생각을 직접 기고한 건 처음이다.
샤론 최는 에세이에서 지난해 4월 이메일로 봉준호 감독의 통역 의뢰를 받았지만 당시 단편영화 각본을 쓰느라 메일을 확인하지 못해 기회를 놓쳤었다고 밝혔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느낌표(!)를 마구 입력했다가 겨우 프로답게 답장을 했다”며 “‘다음번에는 가능하니 다시 연락 달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며칠 뒤 다시 봉 감독 측으로부터 제의가 들어왔던 순간을 떠올리며 샤론 최는 “가장 좋아하는 펜과 메모지를 가져다 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며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내 예민한 방광이 한 시간 동안 버텨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이후 샤론 최는 봉 감독과 ‘기생충’ 팀의 전담 통역사로 활약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통역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전까지 샤론 최의 통역 경험은 단 1주일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관련이었다.
통역 과정에서 봉 감독의 과거 작품에 대한 참고사항 등을 빠트렸던 경험도 소개했다. 샤론 최는 이 사실을 깨달은 뒤 “‘이제 다른 통역가가 화장실을 걱정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수로 인해 다른 통역가가 자신의 자리를 꿰찰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군중 앞에 봉 감독과 단둘이 나서야 했던 샤론 최는 평온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항상 불안감과 싸워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가 존경하는 그분의 말을 잘못 전달하지 않을까 우려했다”며 “무대 공포증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무대 뒤에서 하는 10초간의 명상이었고, 사람들이 보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샤론 최는 “봉 감독과 함께한 모든 여정은 특권 그 자체였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기생충’이 그랜드 뤼미에르 극장에서 첫 상영되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내 고국을 다룬 영화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걸 보는 것은 매우 감격적이었다”며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고 표현했다.
오랜 미국 생활로 한국인과 미국인 둘 사이 어디에도 완벽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그는 “두 문화를 모두 영화 한 편에 담기에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은 모든 (문화적) 장벽을 쉽게 무너뜨리는 듯한 이야기였다”며 “영화제에서 이틀만 일할 줄 알았지만 결국 폐막식까지 남아있어야 했다”고 전했다.
칸영화제 이후 ‘기생충’은 전 세계 50여개 영화제를 휩쓸었다. 특히 얼마 전 막을 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며 정점을 찍었다. 이 같은 인기에 대해 샤론 최는 “나는 특별한 영화를 봤다는 흥분 탓에 눈빛이 반짝거리는 수백 명의 사람과 악수했다”며 “내 이름으로 걸린 작품은 짧은 단편 하나뿐이지만 이미 나는 할리우드의 중심부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고 고백했다.
샤론 최는 영화학과 학생이자 영화감독 지망생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영화에 매료된 이유에 대해 “나는 영어와 한국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에 좌절해 왔기 때문에 영화의 ‘통역이 필요 없는 시각적 언어’에 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자신이 ‘언어의 아바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통역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 자체가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과 공감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연성이 ‘기생충’을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유연성은 이해와 공감을 증진한다”면서 “공감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격차를 해소한다. 외로움을 조금 덜 타는 것이 내가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끝으로 샤론 최는 자신이 구상 중인 영화를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은 “내 마음과 가까운 한국을 배경으로 한 짧은 이야기”라며 “봉 감독이 마틴 스코세이지의 진심 어린 말을 인용한 것처럼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샤론 최의 목표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낼 영화다. 그는 “내 이름이 더는 오직 영화감독 샤론 최로 불릴 수 있길 기다리고 있다”며 “당분간 나에겐 노트북 컴퓨터밖에 없을 것이고 지금 내가 하는 유일한 번역 작업도 나와 영화 언어 사이의 일”이라고 글을 맺었다.
박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