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목사
서울 마라나타 교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요 2:13~25)
유월절이 가까이 오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성전 안에는 소와 양와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흠 없는 소나 양을 빌미로 폭리를 취하여 돈을 벌려는 수작이었겠지요.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이니 흠 없고 좋은 것을 드리려는 순전한 마음의 ‘예배자’들도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챙기려는 ‘강도’들도 있습니다. (마 21:13)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내 아버지의 집’이 장사꾼들의 탐욕 때문에 변질 되어 ‘장사하는 집’이 되어 버렸습니다.(요 2:16)
그것을 본 예수님은 거룩한 분노로 장사하는 사람들의 판을 뒤집어 엎어 버리셨습니다.
악에 맞서는 예수님의 분노는 무섭게 단호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사람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 만남은 만남 자체만으로도 불가능한 만남입니다.
하나님이 만나시겠다고 하시니 가능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완전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항상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코드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람이 그 앞에서 죽기도 합니다.
이렇게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에 자기의 존재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소나 양에게 안수하여 자기를 대신하게 하여 죄의 벌로 각을 뜨고 피를 뿌려서 정결하게 합니다.
그렇게 드려지는 소나 양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예배자들에게 성전 안에서 소나 양을 파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의도가 악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에서 까지 머리를 써서 폭리를 취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죄를 만들어내는 악한 자들은 참 기발합니다. 죄는 대담합니다.
하나님을 느끼면서는 그렇게 용감한 행동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고는 기발하게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 앞에서 거룩이 훼손되는 모든 행위들을 예수님은 엄중하게 질책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장소의 성전은 헐어 지고 예수님은 자기 몸으로 성전을 친히 세우실 것입니다. (요 2:19)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성전이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성전과 유대인들의 삶은 떼어 놓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목숨을 걸고 성전을 지켜 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몸으로 세우신 성전이 올 때 그렇게 붙들었던 유대인들의 성전은 허물어 져야 합니다.(요 2:19)
원본의 오리지널 성전이 유대인들의 눈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누가 이 성전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깨닫는 사람은 성전을 가지며 기뻐 감격하겠지만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성전을 영영 잃어버릴 것입니다.
이 선택 앞에서 예수님을 속히 알고 깨달아야만 합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이 온 몸을 던져서 세우신 이 성전을 자기 안에 가졌습니다.
성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열심 으로 교회를 사랑하실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요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