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연기하며 예쁘고 멋져야 한다는 강박 벗어났죠”

입력 2020-02-17 16:26 수정 2020-02-17 17:54
박소진. 눈컴퍼니 제공


그룹 걸스데이의 리더이자 맏언니 박소진이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10년 만에 내려놓고 향한 곳은 수많은 연기 오디션 현장들이었다. “음악을 처음 할 때처럼 불꽃이 타오른다”는 그는 수십 개의 시험을 치르면서 영화와 드라마로, 또 연극으로 팬들을 만나고 있다.

박소진은 최근 야구를 소재로 해 화제를 모은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만년 꼴찌 팀 드림즈의 곁에서 활약하는 스포츠 아나운서 김영채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사실상 드라마 데뷔전이었음에도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을 끌어냈다.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많은 분이 사랑해주셔서 드라마의 힘을 새삼 실감한다”며 “스토브리그 오디션을 통과하고 펑펑 울었던 때만큼이나 뿌듯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드림즈의 문제를 파고들었던 영채는 극 초반부 병역 문제에 시달리던 팀의 용병 길창주(이용우)를 정면에서 공격하며 눈총을 받았다. 박소진은 “대사 자체가 워낙 세고 극의 몰입감도 커 미움도 많이 받았다”며 “영채는 자기 일을 잘 해내고픈 투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얄미운 사람으로 보였다면 연기로선 충분했던 것인데, 처음엔 날카로운 반응들이 아프기도 하더라”고 털어놨다.


박소진. 눈컴퍼니 제공


삶이 머무는 곳곳에 TV 뉴스를 틀어놓고 아나운서들의 발음과 톤을 연습했다. 여러 종류의 인터뷰 영상을 온라인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짤막한 등장에도 영채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단단한 인상을 심어줬던 건 숱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박소진은 “어렸을 적 부모님과 야구를 보러 다녔던 게 전부라 더 열심히 준비했다”며 “영채란 인물이 무겁게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했다. 캐주얼하고 편한 모습을 많이 묻히려 했다”고 설명했다.

박소진은 2014년 TV조선 드라마 ‘최고의 결혼’에서 얼굴을 비춘 뒤 다양한 작품에서 경험을 쌓았다. 배우 전문 연예기획사 눈컴퍼니와 지난해 3월 전속계약을 맺은 후에는 저예산 독립영화 ‘제비’와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스핀오프 웹드라마 ‘부릉부릉 천리마마트’ 등 다양한 작품에 쉼 없이 출연 중이다. 박소진은 “걸스데이 멤버들을 만난 게 내 인생 첫 번째 행운이라면, 지금 회사에 몸을 담은 게 두 번째 행운”이라며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회사 식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Something’ ‘기대해’ 등을 히트시킨 정상급 그룹 멤버였던 그가 돌연 새내기 배우의 길에 들어선 건 2년 전 서울 대학로의 한 연극을 만나면서였다. ‘러브스코어’라는 재기발랄한 로맨스극이었다. 박소진은 “러브스코어에서 내성적인 면도 적지 않은 나와는 다른 밝은 캐릭터를 연기했었는데, 많은 분이 ‘박소진 같았다’고 말해 놀랐었다”며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작은 이야기들을 키워가는 과정이 너무나 즐겁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연기는 그에게 선물이 됐다. 배우의 일은 그에게 완벽함에 대한 부담감을 훌훌 털고 삶의 여유로움이란 옷을 새로 입혀준 무대와 같았다. 박소진은 “가수로 활동하면서 멋있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에 대한 기준이 많았던 만큼 자기애도 적었다”며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는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않은 게 그 자체로 매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이제 ‘주름이 생겨도 예쁘다’ ‘찡그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수도 배우도 늦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느림에 감사하고 있다”고 미소지었다.


박소진. 눈컴퍼니 제공


다른 분야에서 배우로 길을 튼 이들에게는 늘 편견도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박소진은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에 대해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드릴 기회”라면서도 “100번의 오디션도 당연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언젠가 박소진보다는 극 중 인물로 기억되는 그런 배우가 됐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삶의 원동력 중 하나는 걸스데이 멤버들이다. 다른 소속사에 둥지를 틀고 각자 다른 활동에 전념 중인 멤버들이지만, 여전히 가족과 다름없는 끈끈한 우애를 자랑한다. 인터뷰 전날 역시 멤버들이 박소진이 출연 중인 대학로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를 보러와 응원을 전했다고 한다. 박소진은 “유라가 연극을 보고 울었다고 해주는데, 힘이 나더라”며 “음악 역시 긴 호흡을 가지고 천천히 해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박소진이 꿈꾸는 배우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는 드림즈 단장 승수(남궁민)의 새 도전을 암시한 스토브리그의 끝맺음처럼 “성장을 거듭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기를 공부하면서 일상을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예술이 끊임없이 변하듯 저도 굳어있지 않고 계속 공부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