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새누리당, 돌고돌아 호남당…자가복제 늪 빠진 정치권

입력 2020-02-16 18:01 수정 2020-02-16 18:16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1동 일대 시장에서 한 시민과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자가복제의 늪에 빠진 모습이다. 과거 유권자의 외면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던 정치 세력들이 총선용 정당을 급조해 다시 손을 맞잡고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민주통합당, 국민의당 등 한때 쓰이다 버려진 당명들까지 재등장하고 있다. 선거철마다 창당을 남발하면서 더 이상 새롭게 쓸 당명조차 없어진 정치권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으로 사분오열됐던 보수 정치권은 17일 미래통합당이란 이름 아래 다시 합친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보수 대통합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지 석달 만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도로 새누리당’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지도부의 면면이 보수 세력의 전신이던 새누리당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적통을 잇는 한국당 최고위원회의가 미래통합당 지도부로 간판만 바꿔 단 데다 새로 합류한 원희룡 제주지사와 이준석 새보수당 젊은정당비전위원장도 이들과 한솥밥을 먹던 사이다.

이 때문에 미래통합당 안에서도 중도 확장성을 두고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유승민 새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최근 한국당에 신설 합당을 제안하면서도 “단순히 합치는 것만으로는 보수가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우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래통합당은 16일 청년세대가 주축이 된 신생정당들(브랜뉴파티·같이오름·젊은보수)의 지지를 끌어내는 등 외연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창당준비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경기도당 창당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을 추진 중인 옛 국민의당 계열 정당들(바른미래당·대안신당·민주평화당)은 ‘도로 호남당’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이들은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활동하다 안철수 전 대표를 따라 국민의당으로 이적했고 이후 분당과 합당을 되풀이하다 결국 민주통합당이란 이름으로 헤쳐 모이기로 했다. 19대 대선 때 진보 진영 야당들이 합당해 탄생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셈이다. 17일 합당이 마무리되면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안신당 최경환, 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각기 다른 민주통합당 당적을 두 번이나 갖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안철수 창당준비위원장이 추진하는 신당의 명칭도 그가 창당했고 또 소멸시켰던 국민의당으로 결정됐다. 앞서 당명으로 제시한 안철수신당과 국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퇴짜를 맞으면서 내놓은 고육지책이라지만 새로울 게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주 속속 신당이 출범하면서 4·15 총선은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신당 출범에 따른 컨벤션효과로 보수통합 지지세에 변화가 있을지, 또 최근 ‘임미리 교수 고발 사태’ 등을 겪으며 부각된 정권 심판론이 더 확산될지 주목된다. 앞서 한국갤럽의 지난 11~13일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 포인트)에서 정권 심판론(45%)과 야당 심판론(43%)은 오차범위 내 접점을 나타냈다(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심우삼 김나래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