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조직 탈레반과 다음 주부터 임시 휴전에 들어간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인 아프간 전쟁을 끝내기 위한 첫 걸음을 뗀 것이다. 현지에서는 탈레반이 이 조치를 아프간 정복의 기회로 악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15일(현지시간) 미국과 탈레반이 오는 17일부터 일주일 간 자살폭탄테러 등 일체의 폭력 행위를 자제하는 내용의 휴전 합의를 맺었다고 밝혔다. 일주일짜리 휴전이지만 양측이 향후 10일 내 평화협상을 진행하기로 한 만큼 영구적인 전쟁 종결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몰린다. 에스퍼 장관은 “7일 휴전과 10일 내 평화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약 1만2000명의 미군 병력을 8600명으로 줄일 수 있다”며 “리스크가 없지는 않지만 전망이 매우 밝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아프간 내 미군의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며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진행해왔다.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가 2001년 9·11 테러를 저지르자 같은 해 미국은 아프간을 침공해 알카에다의 은거를 도운 탈레반 정권을 궤멸시켰다. 하지만 탈레반은 그후 게릴라전을 펼치며 세력을 회복해 현재는 아프간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18년 중반부터는 미국과 직접 평화협상도 벌여왔다. 이들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세운 민주공화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정부를 국가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양측의 평화협상 움직임과 관련해 탈레반이 이를 ‘트로이의 목마’로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탈레반이 위장 평화로 미국을 속인 뒤 아프간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니 대통령은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평화협상 과정 없이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며 미국과 탈레반 사이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탈레반의 진정성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면서 “아프간에 항구적인 평화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탈레반 세력도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며 ”선거 수용 여부가 탈레반의 진정성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단계적 미군 감축일 뿐 완전 철수가 아니라는 입장을 펴며 아프간 정부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CNN방송은 한 아프간 소식통을 인용해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미국 관료들이 가니 대통령과 그의 정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프간 관료들을 안심시켰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 관료들은 “미 정부는 탈레반이 미국과의 협상을 어길 경우 그들을 궤멸시킬 치명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우리는 현재 아프간과 함께 있으며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