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대응은 너무 늦었다…크루즈선·지역사회 감염 확산

입력 2020-02-16 16:23 수정 2020-02-16 17:05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12일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사쿠라를 보는 모임' 논란 등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거론하며 비판의 날을 세운 야당 의원에 대해 "의미 없는 질문을 한다"고 야유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16일 70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자가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 3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이후 지금까지 탑승자 3711명 가운데 감염자는 355명으로 늘어났고, 일본 전체 감염자 수는 408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국내 감염자 53명 가운데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사례까지 잇따르고 있다. 일본 방역 시스템이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면서 미국을 필두로 캐나다, 홍콩, 대만 정부가 전세기를 보내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탑승한 자국 국민들을 철수시키로 결정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후생노동상은 이날 NHK에 출연해 “이젠 ‘감염 확대’를 전제로 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토 후생노동상은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이전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됐다”며 사실상 ‘유행’ 단계에 진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대책의 중점을 외국으로부터의 유입을 막는 ‘미즈기와’(水際)에서 국내 검사와 치료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앞다퉈 전했다.

일본어로 물가를 뜻하는 미즈기와는 병원균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공항이나 항구에서 물샐 틈 없는 방역 대책을 펴는 것을 말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19가 중국 전역을 넘어 아시아·유럽·북미 지역으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지난달 말부터 중국 체류 경험이 있는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등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한 방역대책을 추진해왔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탑승자들에 대해 ‘선상 격리’ 조치를 취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국 11개 광역 지자체에서 53명의 감염자가 나오는 등 일본 내 지역사회 감염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 감염 사례로 5명의 감염자가 발생한 와카야마현 소재 사이세이카이아리다 병원과 9명의 도쿄도 거주 감염자가 발생한 놀잇배 신년회를 꼽을 수 있다. 놀잇배 신년회 감염자 중 5명은 택시기사여서 일본 내 대중교통 수단 방역에도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지난 13일 가나가와현에서 중국 방문 경험이 없는 80대 여성이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폐렴 등 합병증으로 숨지는 등 감염경로 파악이 어려운 확진 환자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후생노동성이 감염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사례는 와카야마현 사이세이카이아리다병원 집단 감염과 지바현 20대 남성, 홋카이도 50대 남성, 아이치현 60대 남성 등 4건이라고 NHK는 전했다.

일본 정부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대응에도 실패했다. 크루즈선에 탑승했다가 지난달 25일 홍콩에서 내린 80세 남성의 코로나19 감염 사실을 이달 2일 홍콩 당국으로부터 통보받고도 10명의 집단 감염이 확인된 5일에서야 승객들에 대한 객실 대기를 결정했다. 또한 크루즈선의 승객과 승무원 전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하다가 전날에서야 탑승자 전원 검사를 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감염이 확인된 탑승객들은 배에서 내려 병원으로 이송됐고 배에는 아직도 3400여 명이 격리돼 사실상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미숙한 크루즈선 집단 감염 사태 대응을 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일본 정부의 공중 보건 위기 대응을 가리켜 “이렇게 해선 안된다는 교과서 같은 대응”이라고 꼬집었다. 급기야 미국 정부를 필두로 캐나다, 홍콩, 대만이 각각 전세기를 보내 자국 탑승자들의 철수를 돕기로 결정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탑승자 가운데 미국인은 428명, 캐나다인은 255명, 홍콩인은 330명, 대만인은 20여명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 정부도 한국인 탑승자 14명에 대해 항공편으로 이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아베 정부의 서툰 대응에 대해 점점 일본 내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강력한 지지자인 산케이신문마저 아베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후생노동상을 지낸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도지사는 15일 밤 트위터에 “일본 정부의 대응은 너무 늦었다”면서 “이제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대응할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탄식했다. 이어 “위기 관리의 적은 가스미가세키(일본 중앙 관가)의 세력 싸움이다. 그것을 총리가 조절하지 못하면 최악의 사태가 된다”면서 “크루즈선의 감염 확산은 국토교통성과 후생노동성 사이의 조정 실패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