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르롱 프랑스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유럽 대륙은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 프랑스의 핵무기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 탓에 유럽과 미국의 대서양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흔들리는 상황을 틈타 자국의 유럽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서 “유럽의 외교안보정책은 이제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며 유럽세계 군사동맹의 재구성을 역설했다. 뮌헨안보회의는 1963년 창설된 유럽 최대 규모의 연례 국제안보회의로 지역적 문제는 물론이고 범세계적 안보 문제가 논의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의 서방 동맹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는 오랫동안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에 기대 러시아의 위협 등 지역 안보 문제를 해결해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부가 자국의 이익이 없는 곳의 국제 분쟁에는 적극 개입하지 않겠다는 신고립주의 기조를 강화하면서 서구권 최대 군사동맹체는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 같은 대외정책 방향의 정점에 서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미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며 유럽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유럽 개혁이 시급해졌다”며 “프랑스의 핵 억지력을 유럽 안보전략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EU 회원국 중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 단 둘이었지만 브렉시트로 이제 프랑스만이 EU 내 유일한 핵 보유국으로 남게됐다. 미국 대신 프랑스가 유럽 대륙의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마크롱의 구상이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줄곧 유럽 안보를 더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나토는 뇌사 상태”라는 발언을 통해 미국 중심의 군사 동맹체의 위상을 뒤흔들기도 했다.
다만 EU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 프랑스의 야심에 반대하고 있어 마크롱의 제안이 수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EU를 지탱하는 두 강국은 EU의 맹주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독일은 핵무기에 대해 우리와 솔직한 토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독일은 유럽 대륙의 안보를 프랑스의 핵무기에 의존할 경우 EU의 중심축이 급격하게 프랑스로 쏠리게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대신 프랑스의 핵우산을 사용할 경우 EU는 그 대가로 프랑스에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뮌헨안보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오늘날 유럽이 이미 핵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마크롱의 요구를 일축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