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과 비영어권 영화 최초의 작품상 수상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코리안 듀오’ 안병훈(29)과 임성재(22)에게 작지 않은 자극이 됐다. 이들 또한 남자골프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허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비주류’ 한국의 도전자들이다. 기생충이 이들에게 준 것은 영감, 그리고 긍지였다.
PGA 투어는 16일(한국시간)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과 관련한 안병훈과 임성재의 의견을 국내 마케팅사 스포티즌을 통해 전했다. 이날은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돌비 극장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으로부터 일주일이 된 날이다. 임성재는 세계 랭킹 33위, 안병훈은 48위로 한국 선수 중 1·2위에 있다.
안병훈은 평소 마블·DC의 만화 원작 리메이크를 즐기는 영화 마니아라고 한다. 안병훈은 할리우드 영화 ‘조커’의 작품상 수상을 예상하고 있었다. 미국 올랜도에서 부인과 함께 TV로 아카데미 시상식 생중계를 시청하던 안병훈은 ‘기생충’의 수상이 확정되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 호명 순간에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영상을 올리고 ‘소름이 돋는다’고 적기도 했다.
안병훈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쾌거는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아무도 못한 일을 처음으로 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이 놀라고 기뻐하고 있다”며 “골프로 비교하면 한국인 최초 (PGA 투어) 메이저 대회 우승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안병훈에게 ‘최애 영화’(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기생충’이라고 한다. 안병훈은 이미 영화 개봉 직후에 노트북 컴퓨터로 한 차례, 2019 프레지던츠컵 출전을 위해 비행기로 이동하던 지난해 12월에 한 차례, 그렇게 두 차례 ‘기생충’을 감상했다. 안병훈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강렬하다. 처음에는 봉 감독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해 인터넷에서 의미와 내용을 찾아보고 다시 영화를 봤다”고 했다.
임성재는 기생충 출연·제작진과 마찬가지로 PGA에서 또 다른 장벽을 허물어낸 주인공이다. 2018-2019시즌에 아시아 국적 선수 최초의 PGA 투어 신인왕을 달성했다. 기생충의 쾌거는 임성재에게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임성재는 “굉장히 독특한 영화였다. 재미있지만 특이했다”며 “영어로 제작된 영화도 아닌데 아카데미에서 큰 상을 4개나 받았다니 대단하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