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를 입어서 도움을 청해도 지체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인정을 안해요. 분명한 증거가 없으면 장애인들은 어떤 도움도 받기 어려워요.”
장애인 체육선수 열 명 중 한 명 꼴로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13일 드러났다.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학대 피해자는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었다. 외부기관에 신고하더라도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 피해를 감추고 살아야 하는 실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서울 중구 인권교육센터에서 장애인 체육선수 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정책간담회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는 인권위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9월말부터 10월말까지 장애인 선수 1554명을 대상으로 시행했다.
응답한 장애인 선수 중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는 9.2%였다. 특히 초·중·고교 장애인 선수 중에서 피해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9.6%였다. 이는 지난해 비장애인 체육선수들을 상대로 조사했을 때 피해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5.0%)에 비해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이밖에 전체 여성 장애인 선수들의 8.8%, 남성 선수들의 4.7%가 육체적 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전체 성폭력 가해자는 일반 스포츠 선수들과 달리 동료나 후배의 비중이 40.6%로 가장 높았다. 인권위는 다만 언어적 성폭력은 선배 선수가, 육체적 성폭력은 코치나 감독이 주로 가해자였다고 밝혔다. 피해자 중 현재 속한 운동부 내에서 피해를 당했다고 답한 비율도 13.0%에 달했다. 피해를 당한 이들 중 절반은 도움을 요청하거나 외부 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2012년에도 직권조사를 실시했지만 당시 성폭력 피해 응답비율은 0%였다. 이후에도 2년 단위로 실태조사가 진행돼야 했지만 최근까지 추가조사는 없었다. 인권위는 “체육계의 구조적 폐쇄성, 내부 자정작용으로는 인권침해 구제에 한계가 있는 게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외에도 장애인 선수들은 다양한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전체 선수 중 22.2%는 폭력·학대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외부기관에 신고한 피해자 중에서 67.3%는 신고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등 2차 피해를 경험했다. 사건 접수를 운동부 지도자나 동료에게 당사자 허락없이 알리거나 혹은 당사자를 비난·의심하고 또는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합의를 유도했다.
장애인 선수들은 체육시설을 이용할 때도 차별을 당했다. 공공체육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 선수 응답자 중에서 24.9%가 장애를 이유로 시설 이용에 차별 겪거나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민간 시설 이용자 역시 비율이 21.4%나 됐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