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극우 성향 정치인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이 내무장관 시절 난민을 실은 해안경비선의 입항을 막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극우정당 ‘북부동맹’을 이끄는 살비니 의원은 앞서 수차례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질 뻔했지만 ‘오성운동’과의 연정으로 면책특권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강경한 난민 정책으로 얻은 지지율을 믿고 연정붕괴를 선언한 것이 자충수가 됐다.
이탈리아 상원은 12일(현지시간) 살비니 의원이 재판에 넘겨지도록 면책특권을 박탈하는 표결을 진행해 찬성 152표, 반대 76표로 통과시켰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살비니 의원은 지난해 7월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지내면서 리비아 난민 131명의 자국에 하선하는 것을 거부했다. 난민을 태운 보트는 이탈리아로 접근하던 중 순시선에 붙잡혀 이탈리아 해안경비선 브루노 그레고레티호로 이송됐고, 이 함정은 시칠리아의 아우구스타항에 입항하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시칠리아 카타니아 특별법원은 지난해 12월 살비니 의원이 난민을 불법 감금했다며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상·하원의원들이 직무와 관련해 형사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면책특권을 인정한다. 면책특권 해제를 위해서는 상원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이번에 상원 표결로 해제된 것이다.
살비니 의원은 투표에 앞서 난민의 입항을 막은 것은 다른 정부 관계자들과의 논의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살비니는 상원에 “나는 고개를 높이 들고 법정으로 가길 바란다”며 “국경을 지키는 건 내 의무였다”고 말했다. 이어 “내 아이들과 이탈리아의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럽다”며 “내가 범죄자인지 단지 내 업무를 수행했는지 판사가 결정하도록 하자”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살비니 의원은 지난해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질 뻔했지만 상원이 저지했다. 법원은 2018년 8월 구조된 아프리카 난민을 태운 디초티호의 이탈리아 입항을 열흘간 막아 인권을 침해한 혐의로 살비니 의원에 대한 면책특권 해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인 ‘오성운동’이 살비니 의원이 이끄는 ‘동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어 면책특권이 유지됐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살비니 의원이 오성운동과의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다며 돌연 연정 붕괴를 선언한 게 자충수가 됐다. 반이민 정책으로 지지율이 급상승하자 조기 총선을 통해 집권을 꿈꿨지만, 오히려 오성운동과 민주당이 밀착하는 계기가 됐고, 오성운동도 더 이상 살비니 의원을 방어할 이유가 없어졌다.
살비니 의원은 또 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 상원 면책위원회는 오는 27일 살비니 의원이 난민 100여명을 실은 스페인 구호단체 ‘오픈 암스(Open Arms)’의 구호선의 입항을 거부한 것과 관련해서도 면책특권 박탈 여부를 표결할 예정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