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돈 낭비” 트럼프, 필리핀 군사훈련 종료 통보에 “돈 절약”

입력 2020-02-13 12:04 수정 2020-02-13 12:42
필리핀, 前경찰청장 미국 비자 취소되자 ‘방문군 협정’ 종료 통보
트럼프 대통령 “신경 쓰지 않는다. 많은 돈 아끼게 될 것”
한국·일본과 미군 놓고 갈등 상황서 방문군 협정 종료는 미국에 타격
에스퍼 美국방장관, 필리핀 결정에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것”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017년 11월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필리핀이 미국·필리핀 합동 군사훈련의 근거가 되는 ‘방문군 협정(VFA)’ 종료를 통보한 것과 관련해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많은 돈을 아끼게 될 것”이라고 12일(현지시간) 말했다.

이번 발언은 동맹국과의 군사훈련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완전한 돈 낭비”, “워게임”, “터무니없고 돈이 많이 든다”고 여러 차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필리핀 간 방문군 협정이 실제로 종료될 경우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군 주둔을 놓고 미국이 한국·일본이 갈등을 빚는 데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필리핀과의 방문국 협정 종료는 미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11일 방문군 협정의 종료를 미국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발단이 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을 지휘했던 경찰청장 출신 델라 로사 상원의원의 미국 비자가 취소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백악관에서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전 기자들로부터 방문군 협정 종료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진짜로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필리핀을 많이 도왔다. 우리는 필리핀이 ISIS(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를 격퇴하는 것을 도왔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실제로 (필리핀과) 잘 지낸다”며 “우리는 그쪽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그들(필리핀)이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 그것도 괜찮다”면서 “우리는 많은 돈을 아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알다시피 나의 관점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면서 “나는 그것(방문군 협정 종료)을 ‘매우 고맙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많은 돈을 아낀다”고 반복한 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끝을 맺었다.

이에 따라 방문군 협정이 종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에 “한 달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필리핀의 위협에 오히려 “돈을 아낀다”고 반기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필리핀 협정에 따라 필리핀이 미국에 방문군 협정 종료를 통보하더라도 180일간은 효력이 유지된다.

이에 앞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결정이 나온 직후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스퍼 장관은 필리핀에 대해 “유감스럽다”면서 “이 결정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에 국제사회의 질서를 준수할 것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1998년 발효된 방문군 협정은 필리핀에서 미국과 필리핀이 함께 펼쳤던 연례 합동 군사훈련인 ‘발리카탄’의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두테르테 대통령은 ‘막말’, ‘스트롱 맨’ 등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2017년 11월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렸던 미국·필리핀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의 명분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인권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독재자 감싸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