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변가로 정평이 난 봉준호(51) 감독의 수상 소감은 매번 화제가 된다. 그의 영화가 그렇듯,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번뜩이는 유머와 재치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전 세계 178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마다 되풀이되는 소감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배우와 스태프들을 향한 헌사다.
이번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영광의 자리에서 그는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기에 바빴다. “이 영화를 함께 만든 멋진 배우와 스태프들이 여기 와있습니다. 사랑하는 송강호 이선균 최우식 장혜진 박명훈 박소담 이정은 조여정. 그리고 위대한 촬영감독 홍경표, 미술감독 이하준, 편집감독 양진모 등 우리의 훌륭한 모든 예술가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업계에서 봉 감독은 한 번 맺은 인연을 귀히 여기기로 유명하다. 그의 7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은 그런 인연들의 총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그의 페르소나로 통하는 배우 송강호가 합류해 일찌감치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은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에 이어 무려 네 번째 호흡을 맞췄다.
‘기생충’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송강호는 봉 감독에 대해 “20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여전히 유머러스하고 편안하고 따뜻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은 기능적이고 현상적인 표현이라 생각한다. 봉 감독의 본질은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통찰이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우러러보게 된다”고 치켜세웠다.
박 사장네 가정부 문광 역을 맡은 이정은과의 인연은 ‘마더’(2009)부터 시작됐다. 극 중 죽은 여고생의 장례식장에서 싸우는 유족 셋 중 한 명으로 등장했는데, 단역이었다. 봉 감독은 그러나 뮤지컬계 잔뼈가 굵은 이정은의 재능을 잊지 않고 ‘옥자’(2017)의 목소리 연기를 부탁했고, ‘기생충’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기택네 장남 기우 역의 최우식도 ‘옥자’에 출연했었다.
제작진 역시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꾸렸다. ‘기생충’에 참여한 주요 스태프 대부분이 과거 작품을 함께한 사이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공동 수상한 한진원 작가는 ‘옥자’의 연출부로 일했었고,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건 ‘기생충’이 처음이었다.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됐던 이하준 미술감독은 ‘옥자’로 연을 맺었고, 양진모 편집감독은 ‘설국열차’와 ‘옥자’에 참여했다.
인상적인 음악을 완성한 정재일 음악감독과의 협업도 ‘옥자’에 이은 두 번째였다. 홍경표 촬영감독과 최세연 의상감독은 ‘마더’ ‘설국열차’에서, 김서영 분장감독과는 ‘설국열차’에서 각각 호흡을 맞췄다. 최태영 음향감독은 봉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기생충’까지 모든 작품을 함께했다.
남다은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이 ‘송강호를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쓰면 그가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자유롭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믿음의 문제가 아닐까. 완전히 신뢰하는 이들과 함께하면 불안과 염려에 드는 에너지를 오롯이 창작에만 투여할 수 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사실 의리를 중시하는 영화감독들은 많다. 봉 감독이 특별한 점은 그러면서도 훌륭한 결과를 이뤄낸다는 것”이라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