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이 국민만 들뜨게 한 건 아니었다. 국제 영화산업의 중심 할리우드에서 이룬 기생충의 4관왕은 정서와 언어 장벽 앞에 번번이 아쉬움을 삼켰던 한국 영화의 세계적 도약을 공언하는 일이었다. 외신과 글로벌 시민들의 높은 관심에, 업계에서는 영화 한류가 불붙을 것이란 전망이 크다. K팝과 K방송(드라마·예능)에 K무비까지 합세하면서 이른바 ‘한류 삼각편대’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류 물꼬를 튼 K드라마는 ‘겨울연가’가 2000년대 초반 일본 열도를 강타하면서 궤도에 올랐고, 이후 아시아 전역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글로벌 OTT가 정착하면서는 미국과 유럽권으로 발을 뻗었다. 지난해 공개 직후 해외에서 화제를 모은 김은희 작가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이 대표적이다. 세계적 보이그룹으로 자리매김한 BTS 역시 K팝이 세계 주류 문화에 안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분위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한국 음악 예능까지 해외로 발을 넓히고 있는데, 일례로 MBC ‘복면가왕’은 50여개국에 포맷이 팔렸다.
한국 영화산업 규모는 세계 5~6위권 정도다. 그런데 수출만큼은 이질적 정서와 번역의 문제, 낮은 인지도 등으로 부진을 거듭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음악과 방송 산업 수출액은 각각 2억6000만, 1억7000만 달러 정도로, 2018년 같은 기간보다 13.5%, 19.5% 늘었다. 반면 영화는 약 2800만 달러로 증가 폭이 2.2%에 그쳤다.
해외 관객들이 돈과 시간을 투자해 영화관에 오도록 하려면 콘텐츠에 대한 신뢰가 필수다. 전문가들은 ‘라쇼몽’을 만든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일본 영화를 세계에 알렸듯이, 기생충이 한국 영화의 저력을 국제적으로 각인했다고 봤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은 가족이라는 한국적 소재에서 출발해 세계인이 공감할 사회 비판적 메시지까지 밀고 간 수작”며 “한국 영화와 감독, 배우들이 세계로 나갈 통로를 개척했다”고 평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암묵적으로 비주류로 평가받던 한국과 아시아 영화의 유리천장을 깨부순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치켜세웠다.
기생충 북미 박스오피스 순위는 현재 12위에서 4위로 역주행을 시작했다. 해외의 잇단 호평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감지된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10일(현지시간) “기생충의 승리는 K팝과 한국드라마의 폭발적 인기로 아시아 핵심 소프트파워가 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또 다른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평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 역시 본인 트위터에 “한류(The Korean wave)가 확실히 도래했다”고 적었다. 해외 팬들도 기생충 포스터를 패러디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호응에 동참하고 있는데, 극에 등장하는 짜파구리는 영화가 선보인 현지 요리 사이트와 SNS를 달구는 중이다.
한국 영화사들이 외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콘텐츠 협업도 한층 탄력받을 전망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기생충’은 미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 CJ ENM은 현지 제작사와 손잡고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10개 이상의 영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롯데컬처웍스와 쇼박스, NEW 등도 동남아시아 영화 시장을 적극 개척 중이다.
그렇다면 기생충의 성과가 한국 문화 세계화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문화는 속성상 긴밀히 연관돼 있다. 따라서 기생충에 관한 관심은 배우와 노래, 한국어 등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며 “이번 일로 K컬처가 굉장한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