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직원이 근무시간 중 흡연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리를 뜬 시간에 대해 급여를 안 줘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영국 BBC방송은 11일(현지시간) 스페인에서 직원이 근무지 밖에 있는 시간을 근무 시간에서 제하는 에너지회사 갈프의 정책이 합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전했다. 스페인의 경우 많은 회사에서 오전 10~12시 사이 직원들이 커피 브레이크를 가지는 것이 관행처럼 행해져 왔다. 하지만 갈프는 흡연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만큼 급여를 깎았다.
지난해 스페인 정부는 장시간 근로시간 및 무보수 초과 근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직원들의 근무 시작·종료 시각을 의무적으로 기록하도록 하는 법을 도입했다. 정확한 근무시간을 명시해 무분별한 초과근무와 노동 착취를 막자는 취지였다. 이와 관련해 스페인의 근로시간은 유럽 국가 가운데 높은 편이어서 2018년 기준으로 1701시간을 기록, 독일의 1363시간과 영국의 1538시간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무보수 초과근무 시간은 총 300만 시간에 달한다.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취지의 법이 도입되자 갈프는 지난해 9월부터 근무 시작과 종료 시각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근무자들의 실제 근무 시간에 대해서만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 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간에 흡연이나 커피 브레이크를 위해 자리를 비운 근로자에게는 온전한 하루 치 급여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갈프의 행위가 불법이라며 고소했던 노동조합은 사측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이번 판결에 항소할 예정이라고 BBC는 전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흡연이나 커피 브레이크의 근무시간 포함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근무 도중 잠깐 흡연하거나 커피를 사가지고 오는 시간은 근무시간에 포함된다는 판례가 나왔다. 그러나 최근 점심시간 외에 근무중 흡연을 금지하거나 흡연을 허용하되 흡연 시간을 근무 시간에서 제외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 앞서 근무 시간을 단축해 왔던 유럽이나 최근 ‘일하는 방식 개혁’을 통해 잔업 시간을 줄이고 있는 일본에서도 근무중 흡연을 아예 금지하는 곳이 많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근무 시간을 줄여온 만큼 근무 중 흡연에 대해서는 엄격한 편이어서 흡연 시간을 허용할 경우 임금을 삭감하거나 1회당 15분 정도의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이때 근로자들은 임금을 삭감하기보다 근무시간 연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