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반 하나를 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분 안팎. 그 간편함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적잖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집집마다 ‘비상식품’으로 구비 해놓는 것 중 하나가 됐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햇반은 숱한 실패를 겪었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가공식품은 ‘균일한 맛’을 목표로 하는데, 변화를 추구한다니.’ 이런 의문을 품고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시 CJ블로썸파크에서 ‘햇반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쌀·곡물 가공식품 팀장 정효영(44) 상무를 만났다. 정 상무는 2005년부터 햇반 등 쌀가공식품을 연구해 왔고, 2010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구소 내 쌀가공식품 팀장을 맡아오며 ‘햇반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
오랜 연구가 필요한 일인지 물어보니, 정 상무는 작황에 대해 설명했다. “쌀은 매년 다른 결과물을 냅니다. 2018년 쌀과 2019년 쌀이 균일하지 않고, 경기도 쌀과 경상도 쌀이 다를 수 있어요. 그래도 햇반은 동일한 품질을 유지해야 합니다. 달라지는 조건에 따라 품질과 속성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확인하고 조절해야 하는 거죠.”
햇반은 원재료가 쌀 100%인 가공식품이다. 원료가 하나 뿐인 햇반을 연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10명 이상의 연구원이 매달려 왔다.
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도 이야기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는 밥을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거잖아요. 보통 기업의 연구소는 상품 개발을 위해 연구하는데, 저희는 원료인 ‘쌀’을 연구해요. 기초연구를 이렇게 많이 하는 기업 연구소도 드물 거예요.”
정 상무와 연구팀은 저단백식품을 먹어야 하는 희소병 페닐케톤뇨증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몇 년 전 한 직원의 아이가 페닐케톤뇨증 환자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단백 밥을 먹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그게 없는 거예요. 햇반 만드는 회사의 직원이 일본에서 저단백 즉석밥을 수입해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희가 3개월 안에 저단백밥을 만들었습니다. 이 제품을 만들려면 라인 하나를 쉬어야 해서 생산성이 좋지 않지만 지금도 만들고 있어요.”
쌀을 연구하면 밥도 편히 못 먹는단다. 정 상무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이 밥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쌀의 품종은 뭔지’ 이런 것들이 저절로 떠오르죠.”
2015년 햇반을 기반으로 다양한 메뉴를 적용한 컵반이 나왔고, 지난해 비비고죽으로 확장됐다. 연구 분야도 쌀에서 곡물로 넓어졌다. “몸에 좋은 곡식을 이용해 가공식품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확장해 나가는 건 의미 있는 일이예요. 변치 않는 맛을 이어가면서 혁신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원=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