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부장판사 관용차’ 폐지는 위헌?…평판사들 “무리한 주장”

입력 2020-02-12 11:42 수정 2020-02-12 13:51
김명수(왼쪽 세번째) 대법원장이 지난달 2일 사법행정자문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관용차 차량 유지 여부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대법원 제공

‘김명수 대법원’이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관용차(전용차량)’ 폐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관의 불이익 처분을 제한하는 헌법 106조 위반”이라는 고법 부장판사들의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일선 평판사들은 “고법 부장판사들이 특권을 놓기 싫어 무리한 해석을 한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헌법 106조의 내용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아니면 파면되지 않고, 징계처분 없이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불이익 처분을 금지해 법관 신분을 헌법으로 보장한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고법 부장판사 일각에서는 이 헌법 조항을 근거로 “전용차량 폐지는 근거 없는 불이익 처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법규에 근거해 제공되던 예우를 없애는 것은 불합리한 불이익 조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법 부장판사들의 불만은 최근 전용차량 폐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는 사법행정자문회의에도 전달됐다. 지난달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는 “전용차량 폐지가 헌법 106조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전용차량 폐지 이후 보완책에 대해 예산당국과 협의가 잘 될지 불투명하다”는 등 고법 부장판사들의 우려 사항이 언급됐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고법 부장판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그런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법원 안팎에서는 “검찰도 없앤 관용차를 법원이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해 10월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 검사장 전용차량을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국회가 12월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검사장 전용차량은 역사의 유물이 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개혁의 불똥이 법원까지 튀었다”고 말했다.

고법 부장판사들 사이에서는 “검찰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개혁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검사장과 달리 고법 부장판사는 관용차량을 배정할 분명한 법적 근거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원 공용차량 관리규칙은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의 법관’을 전용차량 배정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검사장은 전용차량이 없어진 대신 명예퇴직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고법 부장판사는 불이익만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일선 평판사들은 “헌법 106조 위반은 무리한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헌법 106조는 법관 신분이나 지위 등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불리한 처분을 말하는 것이지 전용차량 배정과 같은 정책 결정의 문제에는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법원의 다른 부장판사는 “고법 부장판사의 전용차량을 폐지하는 것은 사법부 내 만연해 있던 출세지향주의를 타파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고법 부장판사는 “실제로 전용차량을 쓸 일이 있는지 여부 따라 판단하면 되는 문제”라면서도 “법원 내에서 고법 부장판사들이 무작정 개혁 대상으로 몰리는 분위기에 대한 서운함도 존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사법행정자문회의는 고법 부장판사 전용차량을 계속 배정할 것인지, 개선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이달 말까지 연구하고 오는 3월 회의에서 결과를 보고 받을 예정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논의가 시작된 만큼 관용차를 그대로 유지하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