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때문에…죄책감 시달리던 20대 취준생 극단적 선택

입력 2020-02-12 10:07
기사와 관련 없는 이미지. 아이스톡포토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20대 취업준비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피해자는 430만원을 인출해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전달한 뒤 연락이 두절되자 이틀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12일 전북 순창경찰서 등에 따르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2일 순창의 한 아파트에서 피해자 A씨(28)가 숨진 채 발견됐다.

취준생이던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이틀 전인 지난달 20일,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사칭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계좌가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돼 일단 돈을 찾아야 하고 수사가 끝나면 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남성은 A씨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의 이메일로 조작된 검찰 출입증과 명함을 보냈다. 그러면서 A씨에게 ‘전화를 끊으면 현행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중간에 전화를 끊지 못하도록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이 같은 협박에 A씨는 전화를 끊지 못하고 장장 11시간을 통화했다.

결국 A씨는 조직원 남성의 지시에 따라 정읍의 한 은행에서 430만원을 찾은 뒤 KTX를 타고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 돈을 가져다 놓았다. 남성은 ‘수사가 끝나면 돈을 돌려주겠다’며 인근의 카페에서 기다릴 것을 요구했고 A씨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이 남성은 돈과 함께 사라진 뒤 연락이 두절됐다.

A씨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곤 죄책감에 시달리다 이틀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씨의 유서를 통해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안 그의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해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뒤를 쫓고 있다”며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전화번호 등을 추적한 결과 이른바 ‘대포 유심’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이를 유통한 업자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